[박종섭 더봄] 도시농부의 텃밭 이야기 ⑩ 텃밭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웃과 소통은 덤

[박종섭의 은퇴와 마주 서기] 텃밭은 이웃과 소통의 장소 자연을 사랑하고 걸으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관리

2024-11-01     박종섭 은퇴생활 칼럼니스트
가을 김장용 채소가 익어가는 텃밭 /박종섭

텃밭에 나가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나온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몇 배의 텃밭을 한다. 아마 집에서 장사를 하므로 텃밭에서 채소 등 각종 식재료 부산물을 조달하는 것 같다. 그에게는 텃밭이 일터요 삶의 현장이다.

한때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텃밭의 반장 같은 사람이다. 길에 풀이 나면 풀도 깎아주고 허물어진 길도 고쳐 주기도 한다. 전체 밭 관리를 하는 밭 주인 조카가 관리인으로 있지만 실제적 관리를 하는 사람은 그다.

텃밭은 큰 밭을 작게 쪼개어 많은 사람에게 하나씩 분양했기에 수십 명이 드나들고 있다. 그는 자신을 영감이라 불러달라 해서 편하게 영감님이라 부른다. 나이는 팔십은 넘어 보이지만 자세한 나이는 모른다. 몸은 단단해 보여 아직 농사짓는 데 끄떡없는 체력을 가진 듯했다. 농사를 잘 아는 사람이어서 우리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곤 한다. 경험이 많은 어른이 있다는 것은 도서관이 하나 있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또 한 분 텃밭에서 가끔 만나는 분이 있다. 바로 옆 밭에서 텃밭을 하는 분인데 이분은 은퇴 후 재미 삼아 텃밭을 한다고 했다. 경기도 이천에 큰 밭이 있어 매실, 사과, 배 등을 심어 서울서 오르내리며 과일 농사도 한다고 했다. 거주지는 서울이니 이곳 텃밭을 하나 분양받아 가벼운 식재료를 취득하는 분이다.

어른 팔뚝처럼 굵어져 가는 무 /박종섭

텃밭엔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추나 파, 고추 등을 심었다. 부인은 몇 번 뵌 적 있지만 요즘은 텃밭에 안 나오시기에 안부를 물으니 별일 없다면서도 이제 나이가 그러니 귀찮은 모양이라 한다. 그래서 연세가 몇이냐고 물으니 깜짝 놀랄 말을 한다.

“아내가 나와 동갑이니 올해 85살이에요” 한다.

“예? 그럼, 사장님도 85살이세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전혀 85살 같지 않아서다. 건강도 좋아 보이고 말씀도 잘하시고 늘 활동적이어서 내 생각에 75세 정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하신다.

“잠깐이에요. 언제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갔는지 기억도 없어요.” 매일 운동 삼아 텃밭을 가꾸고 걷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 듯했다.

배추는 잎을 오므려 고갱이를 만든다. /박종섭

주위에 아프다는 사람보다 건강한 사람들을 보며 모델로 삼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가지면 그 사장님처럼 건강도 가능할 거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생각부터 젊게 갖고 젊게 살아야 한다. 이웃이나 타인과 늘 어울리며 젊게 살아야 하며 젊은이들과도 소통해야 한다.

지금 텃밭엔 가을 김장용 채소가 한창 익어가고 있다. 무는 어른 팔뚝같이 굵은 자신의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듯 한다. 반쯤은 지상에 내놓아 마치 근육을 자랑하는 사람처럼 으스대고 있다. 무는 병치레도 하지 않고 씩씩하게 잘 커왔다.

반면, 배추는 어릴 때 달려드는 배추벌레로 무척 힘들게 자랐다. 그 지루한 싸움도 이제 지난 것 같다.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날아간 듯 보이지 않는다. 배추는 넓게 태양 빛을 받아들이던 잎을 오므려 고갱이를 만들고 있다.

배추 고갱이는 햇볕을 가려 푸른 잎을 겹겹이 쌓아 샛노란 색으로 만들며 고소한 맛을 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배추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단단한 배춧속을 만들어낸다.

어린 깻잎 깨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종족 번식을 준비한다. /박종섭

봄에 심은 깻잎 깨(들깨)는 늦여름 수명을 다해 뽑아버렸다. 깻잎으로 장을 담가 먹는 것도 좋지만 고기와 싸 먹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채소가 깻잎이다. 가을에 뜯어 먹을까 싶어 다시 씨를 뿌려 길렀었다.

잎이 나고 자라 막 따 먹으려 할 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들깨는 곧바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착수했다. 종족 번식을 위해 잎사귀보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었다. 꽃피고 열매를 맺으면 깻잎의 수명은 다한 거나 마찬가지다. 어린 깻잎 나무는 더 이상 깻잎을 키우지 않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고 있었다.

텃밭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소통 장소이기도 하지만, 식물과 사람의 소통 장소이기도 하다. ‘식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다. 누가 가르쳐 주거나 잔소리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라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식물이다. 텃밭을 하며 작물을 키우는 것은 그렇게 자연과 함께 살고 자연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