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자신의 취미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 취미는 향기롭고 감미로운 냄새와 맛 자신은 물론 대상에게도 이익이 돼야

2024-10-25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고전 소설 흥부전에 보면 놀부의 심보를 읊은 부분이 2쪽에 걸쳐 나온다.

'애 밴 여자 배 걷어차기, 똥 누는 아이 주저앉히기, 잘 익은 호박에 말뚝 박기, 해 저물어 잘 곳 찾는 행객에게 집에 들게 한 후 캄캄해지면 내쫓기···.'

지금이야 놀부의 이러한 악행은 범법 행위로까지 간주해 저어되지만, 현대에도 유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다. 바로 자기 취미생활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다. 설사 그것이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그런 취미활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서는 다른 이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

에이~ 설마 내 취미가 남에게 피해를 줄까? 일례를 든다면 등산 가서 나무에 자신을 과시하는 리본을 다는 행위, 공공장소에서 산책하며 소위 뽕짝 음악을 크게 틀고 걷는 사람들, 조용한 아파트에서 흘러나오는 고음의 색소폰 연습 소리, 주말 집을 찾아 이웃이야 어떠하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 오붓한 오솔길에서 MTB를 타는 사람···.

등산로에 주렁주렁 매달린 동호회 리본들. 자기 좋다고 다른 대상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사진=한익종

항의라도 하려 치면 듣기 싫으면 귀 막으라든지, 나 좋아하는데 웬 참견이냐며 도리어 역정을 내는 사람···. 이런 부류의 취미생활은 취미가 아니라 놀부의 심보에 가까운 폐해 행위이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는 취미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가다듬어 보고 싶다.

취미는 한자로 趣味로서 '달리다' '촉구하다' '즐겁다' 등의 뜻을 가진 취(趣)와 '맛' '풍미' 등의 뜻을 가진 미(味)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사전에서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달릴 '취' 자를 냄새 '취(臭)'로 바꾸어 해석하고 싶다. 

내 해석이라면 취미는 냄새와 맛인데 냄새와 맛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냄새는 역한 것도 향기로운 것도 있으며, 어떤 맛은 감미로운 것도 역겨운 것도 있다. 향기롭고 감미로운 냄새와 맛이 역겨울 리 없고,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줄 리 없지 않나 하는 궤변(?)에서이다.

자신만의 맛을 챙기기보다는 아름답고 향기로우며 감미로운 맛을 타인에게까지 풍기는 행위가 취미생활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만을 위해 즐기고자 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라고 한 쇼펜하우어의 표현 그대로 지독히 이기적인, 놀부와 같은 인간 아니겠는가? 자신이 즐기는 일이라면 남의 피해는 얼마든지 눈 감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이 지옥 같은 세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하는 취미생활이 혹여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역겨운 냄새와 맛이 나는 행위가 아닐까 라는 경계를 해 보자. 모든 이가 그러한 경계 없이 자신만의 취미를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자신에게도 그대로 돌아오는 부메랑이다.

그러고 보면 취미도 자신은 물론 남에 대한 봉사여야 하고, 삶 자체가 취미여야 한다는 내 지론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