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영 더봄] 죽기 전에 용서하고 가라는 교훈 - 영화 ‘언브로큰’
[강신영 시니어 입장가](23) 앤젤리나 졸리가 메가폰 잡은 2차 대전 실화 올림픽 스타의 참전·표류·포로 생활 등 그려
이 영화는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명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라는 점과 2차 세계대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실존 인물 루이 잠페리니의 실제 체험을 쓴 로라 힐렌브랜드의 원작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했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코엔 형제도 각본에 참여했다.
루이 잠페리니는 이민자의 설움에 시달리며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19세에 최연소 5000m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47일간의 태평양 표류, 그리고 일본군 포로 생활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여준다. 일생에 한 번 겪기도 힘든 일을 여러 번 겪은 사람의 실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백미는 용서이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루이 잠페리니(잭 오코넬 분)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군으로 입대한다. 비행기 엔진 고장으로 태평양에 불시착하고 고무보트로 47일간 표류한다. 먹어야 살 수 있으므로 갈매기도 잡아서 날것으로 먹고 공격해 오는 상어도 잡아먹는다.
태평양 표류 과정은 영화 <생존자들 (Against the Sun)>과 비슷했다. 이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비슷한 시기에 34일간 태평양을 표류하다가 구조된 세 명의 미군 실화를 다룬 영화였다. 다만 그 영화에서는 표류 이야기가 거의 100%이고 살아남은 것이 중요하지 누가 구출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언브로큰>에서는 세 명의 미군 중 한 명은 중간에 고무보트에서 죽어 바다에 수장된다. 그런 환경에 처하면 우선 먹을 것도 문제지만 정신적으로 폐소공포증과 광장공포증이 번갈아 나타난다고 한다. 나머지 두 명도 차례로 죽게 될 것임을 짐작하지만 일본군 군함을 만나 극적으로 살아난다.
그러나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로 생활은 더 비참했다. 포로 생활도 적국이 어느 정도의 국가적 인도주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처우가 크게 다르다. 2차 대전 독일이 패망했을 때 소련군보다 연합군에 항복하려고 난리가 났다는 얘기도 그래서였다. 베트남 전쟁, 태평양 전쟁 때 베트콩이나 일본군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했다. 미군은 적이라는 것이다. 식사도 밥덩어리를 감방 바닥에 개밥처럼 던져 넣는 식이었다.
‘새’라는 별칭을 가진 일본군 와타나베(미야비 분)는 루이를 유난히 괴롭혔다. 원래 군대에서 단체 기합을 받는 일은 흔한 일이지만 한 사람만 괴롭히면 견디기 힘들다. 루이는 장교이고 와타나베는 일본군 장교 시험에서 떨어진 콤플렉스도 있어 루이를 미워했다. 눈빛이 밥맛없다는 이유다. 볼 때마다 상습 구타는 물론 무거운 침목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게 하고 떨어뜨리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나, 힘겨운 짐을 나르는데 발로 차서 떨어뜨리지 않나, 전 미군 포로가 차례로 루이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하라는 명령도 내리는 잔인한 인간이다.
한 미군 포로가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악마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나 주변에서 말린다.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일본이 패전하면 포로들을 그 순간 죽여 없애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으로 너무나 갑자기 전황이 바뀌자 실행에 옮길 틈도 없이 무조건 항복을 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보여준 일본군의 잔학무도한 행위들 때문에 일본 우익들이 이 영화의 일본 상영을 못 하게 했다고 한다. 잔인한 일본군 연기를 한 미야비도 비난의 대상이었고 앤젤리나 졸리 감독의 일본 입국도 막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잔학한 인간성을 가졌다. 세계 어느 나라 전쟁을 봐도 일본군처럼 잔학한 행위를 한 군인들은 없었다. 자신들의 행위가 창피한 줄은 아는 모양이다. 그러니 공개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종전이 되고 루이는 90세까지 살았다. 1980년 동경 올림픽 때 성화 주자로 뛰었다. 루이는 가해자들을 만나 모두 용서했으나 와타나베는 만나기를 거부했다. 와타나베는 전범으로 잡혔다가 미일 화해 정책의 일환으로 사면된다.
포로수용소 시절의 악몽을 생각하면 일본군 와타나베를 찾아가 따로 처절하게 복수하며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겠지만, 신앙의 힘으로 용서한다. 용서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해치는 일이고 평생 가시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승전국 출신이라 하여 개인적으로 전범을 처벌할 권리는 없다. 죽이러 갔다가 죽을 수도 있다. 죽였다 하더라도 살인범으로 형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다 잊고 용서하는 것이 낫다. 나도 군 복무 시절 내게 못되게 군 고참병을 사회에 나와 우연히 만났다. 그가 미안해하지, 나는 다 지난 일이니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피해자는 발 뻗고 자는데 가해자가 불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