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이민자 활용 못 한 해리스, 다시 열세로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허리케인에 일론 머스크까지 트럼프 돕는데 잠잠하기만 한 민주당, 앞질렀단 기분 탓인가 트럼프, 反 다양·형평·포용으로 중도 싹쓸이 美 이민자 경제 성장 이끌고 물가 안정 기여 해리스, 비난 말고 적극 방어 및 비전 보여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에 승리를 가져올 것으로 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부진하다. 해리스는 최근 친기업적 색을 입힌 경제 공약을 발표하면서 중도층과 기업인의 불안을 달래 줄 수 있었지만 어째 '넥스트'가 없는 듯하다.
이는 허리케인 '헐린'이 주요 경합지인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를 강타해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이 이와 관련된 뉴스로 도배된 탓도 있을 것이다. 헐린 때문에 2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주요 고속도로가 유실되고 수백 개의 다리가 무너졌다.
교통망이 붕괴한 와중에도 트럼프는 재빠르게 구호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현장에서 바이든 정부의 연방 방재청(FEMA)이 허리케인 피해자에게 오직 750달러에 달하는 금액만 지원하기로 했다며 비난했다.
물론 이는 생수와 같이 당장 긴급히 필요로 하는 생필품의 구매를 위해 지급되는 단기 지원금의 한도이고 중장기적으로 더 많은 정부 지원금을 청구할 수 있지만 절망과 공포에 빠진 미국인에게는 트럼프의 간결한 비난이 더 선명하게 피부로 느껴졌을 것이다.
최근에는 바이든 정부의 진보 정책에 불만을 가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트럼프의 유세장에 나타나 깡충 춤을 추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공화당은 연방 정부가 불법 입국한 난민에게는 엄청난 예산을 퍼주면서 당장 재난을 당한 자국민은 도외시한다고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이런 와중에도 해리스 진영은 앞서간다는 느낌에 안도했는지 이렇다 할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피해를 당한 지역의 유권자에 대한 강한 동정이나 의미 있는 재난 대책 관련 메시지 발표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선 구도는 서서히 트럼프 진영으로 넘어갔다.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패배한 2020년 대선 이후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연방 의회 의사당에 난입하는 폭거가 일어났음에도 그에 대한 지지는 굳건하다. 풀뿌리 법치주의가 자리 잡았고 생활 속에서 룰(rule)을 중시하는 미국인의 성향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인기는 비상식적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자신과 자기 진영의 비상식을 바이든과 해리스 진영의 비상식으로 덮는 전략으로 전세를 뒤집고 있다. 그는 바이든과 해리스 행정부가 이민정책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중남미 이민자에게 국경을 마구 개방함으로써 미국에 불법 체류자가 넘쳐나게 됐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난민을 가장한 범죄자에게도 고급 호텔에 체류할 비용을 지원해 국고를 낭비하고 치안을 위태롭게 한다고 비난한다. 문제는 트럼프의 이런 주장에 많은 미국인이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연일 유서 깊은 뉴욕 브루클린 다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난민 출신 행상들과 나날이 악화하는 마약 문제가 바이든의 이민 정책 때문이라 결론을 내려버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거의 두 배로 뛴 소비자물가지수와 그로 인한 생활고의 화살도 현 정부로 돌린다.
이민자 문제와 더불어 미국의 보수층이 진보 진영으로부터 척을 지게 하는 이슈는 'DEI'로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앞 자를 땄다. 본래 이민 국가로 출발한 미국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DEI가 강화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다양성은 어떤 조직 내에 구성원의 배경이 다양할 것을 지향한다. 특정 인종, 성별, 나이가 아니라 다수의 인종과 남녀노소가 다양하게 섞여 일함으로써 조직의 문화가 개방화되고 그를 통해 혁신을 창조할 수 있다고 본다.
형평성은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다양성을 넘어 다양한 구성원을 실제로 형평성 있게 대접할 것을 요구한다. 채용과 진급 그리고 조직의 운영에서 모두에게 적용하는 정책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포용성은 다양성과 형평성을 넘어 조직 내 일상생활과 문화에서도 차별성을 느끼지 않도록 관용적인 조직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고 본다. DEI는 최근 들어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등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의 하나로 도입하고 있다.
DEI를 통해 개방과 혁신을 강화하는 것이 조직의 가치를 부양하는 데 필수적이라 보기 때문이다. 실제 DEI가 강한 조직이 다양한 인종과 국적 배경을 가진 인재를 영입해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할 것이다.
미국의 인종 구성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도 DEI가 강조되는 이유다. 늘어나는 남미 계열 인재를 포용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다양성과 포용성 강화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등이 DEI 정책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관련 기구가 늘어나고 기존의 지배층인 백인 및 남성이 역차별당한다는 인식이 또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미국 보수의 본산이라 할만한 텍사스에서는 법으로 공립학교가 DEI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 탓에 기존 DEI 관련 부서에 채용된 인력이 하루아침에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다른 주에서도 DEI에 반발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경제의 성장은 활발한 이민자 유입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용 건설직이나 야외 농장 일 등 이른바 3D 업종에는 신규 유입된 이민자들이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가격을 크게 올려야 할 판이다.
다수의 이민자 덕에 그나마 물가가 안정되고 미국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DEI 정책이 있었기에 극한의 분열로 치닫던 미국 사회가 어느 정도 통합되고 소수 인종과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진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민과 DEI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DNA 안에 태생부터 살아 숨 쉬는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해리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개선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때문에 이민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데 그친다. 바이든이 진보적 어젠다를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의 꿈을 제시했다면 해리스는 상대방 공격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우유부단하고 철학과 에너지가 없는 지도자를 미국 유권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해리스가 선거 전략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그가 변하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과 정부가 또한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