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6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은 것들
[송미옥의 살다보면2] 요가, 몸 구석구석 굳은 근육 풀어주고 글은 욕심만 버리면 누구나 쓸 수 있어 나의 글쓰기도 예순이 넘어서야 잠 깨
작년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동네 주민 센터나 유튜브로도 무료로 배울 수 있으니 참 좋다. 젊은 시절에 본 요가는 몸매가 좋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운동인 줄 알았다. 내가 운동이랍시고 하는 것은 앞만 보고 걷는 것과 아침에 십 분 정도 내 맘대로 하는 몸풀기 체조다.
유연성이라곤 없는 60대 후반에 요가를 시작했으니 고강도 동작은 언감생심 흉내 내는 것도 미안하다. 그러던 내가 쉬운 동작부터 따라 하며 재미를 붙이고 어렵던 동작도 연습과 복습을 반복하니 얼추 자세가 잡혀간다.
요가 수업 첫날, 혼자서 웃었던 일이 생각난다. 몸풀기 동작으로 머리 돌리기를 하는데 천천히 세 바퀴를 돌리라고 했다. 내가 느리게 느리게 서른 번을 헤아리며 돌려도 아직 끝나지 않던 세 바퀴, 성격 급한 내가 그 지루한 것을 즐기며 하는 것을 보면 내 안에 또 다른 숨겨진 놀이가 있었던 거다.
제비처럼 날렵하고 우아한 요가의 곡선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찌뿌둥한 몸이 펴진다. 누군가가 나에게 운동은 뭐 하세요? 라고 물으면 서당 개 삼 년도 안 된 주제에 요가 예찬론을 편다.
문인들에게 큰 기쁨과 영광을 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보며 생활 글쓰기로 문인 흉내를 내고 있는 나를 생각해 본다. 등단한다거나 유명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글쓰기다. 나에겐 즐거운 취미생활이고 또한 재미있다.
요가의 수많은 동작만큼이나, 몸 구석구석 근육들의 활용성만큼이나 문학도 여러 갈래의 방향과 스타일이 있으니 기죽지 않고 쓰고 또 쓰며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다. 나의 글쓰기도 예순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6년 전 신문 지면에 실린 어설픈 내 글을 본 한 교수님이 격려 편지를 보내왔다. 나는 이 편지를 코팅해서 벽에 걸어두고 가끔 읽어본다.
'나이 들어 쓰는 글은 진솔한 인생 이야기이지 문학성이나 비평에 구애받지 마세요. 내 자신에 확신을 가지고 쓰는 자세를 즐기세요. 글로 인해 송이(나의 닉네임) 님의 삶도 한 단계 한 단계 진화된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한 가지 주제로 10년 넘게 쓰고 계신 조주청 작가의 글을 참조하세요. 봄에는 꽃송이 여름은 별송이 가을엔 밤송이 겨울엔 눈송이로, 살아있는 날의 꽃을 피워보세요.'
2008년 1월에 첫 삽을 뜬 조주청 작가의 ‘사랑방 야화, 사랑방 이야기’가 2024년인 올해 끝을 맺었다. 장장 16년을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신 거다. 그 글만이 아니다. 온갖 신문과 지면에 해박한 지식과 여행 이야기도 올리셨으니 다방면으로 술술 풀어지는 글 보따리가 부럽기만 했다. 2주에 한 편 쓰는 거로도 시간이 빨리 간다며 촐싹대다가도, 전성기 땐 한 달에 42건의 마감 글을 썼다는 주 작가님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진다.
고대 요가는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수행 세계였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수행은 뒤로 밀려나고 다이어트와 재활 운동으로 만들어진 동작이 앞줄에 섰다. 그렇게 몸동작을 배우다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중하지 않은 근육이 없다. 몸 곳곳에 스미는 강도와 느낌도 다르다. 내가 할 수 없는 동작에서는 멈출 줄 알고 욕심부리지 않아야 다치지 않고 싫증도 안 난다.
글쓰기도 그렇다. 도서관에 가면 100번부터 1000번까지 수없이 많은 분야의 책이 있지만, 내가 해석할 수 있고 감동하고 배울 수 있는 책에서 나의 수준을 내려놓는다. 고급지면 고급진대로 허접하면 허접한 대로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으면 찾아 읽고 또한 비슷한 문체로 따라 써보며 스스로를 발전시킨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스토리 모임이 있는 날, 노벨상 발표가 난 다음날이라 축제 분위기로 <채식주의자> 책을 옆에 놓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한강 작가의 또 다른 책을 토론 주제로 삼은 적이 있다. 그때도 큰 상을 받은 거라 주저 없이 구입했다.
그런데 내용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나의 문학적인 수준이 낮고 정서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은 작품을 우리글로 읽을 수 있다는 자부심과 우리의 위상에 박수가 절로 쳐지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원들을 배웅한 후 나는 재활용 분리 수거통에 넣어둔 그녀의 책들을 슬그머니 도로 들고 들어와 책장에 고이 꽂았다. 그러고는 20분용 요가를 틀어놓고 자세를 잡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