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눈밭에서 포도알을 찾아라!'···잔나비 콘서트에서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요즘 콘서트는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축제다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기도 하고 스타-팬 사이 플랫폼 역할 하기도
눈밭에서 포도를 찾으라니, 이거 원 옛날 설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아닌가?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 효녀들이 부모님을 위해 한겨울 눈밭에서 딸기나 죽순을 구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일 터인데···.
콘서트 관람도 준비가 필요해
진즉에 시류를 따라잡는 일이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던 터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꽤 어려웠다. 뜨거웠던 여름의 끝자락인 지난 8월의 마지막 날, 평소 보고 싶던 밴드 잔나비의 콘서트를 관람할 기회가 왔다.
지금 생각하니 여름의 끝은커녕 다시 시작하는 여름이라고 할 만큼 뜨거웠던 날이었다. 다행히도 그 어렵다는 티켓팅, 속칭 피 터지는 티켓팅인 '피켓팅'의 관문을 가까스로 넘었다. 그마저도 피시방의 빠른 시스템이었으니 가능했다.
아무튼! 영락없는 라테 세대인 난 '콘서트 티켓'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인기 있는 두서너 곡의 가사 정도 외우는 정성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력이 깜빡깜빡 수시로 신호를 보내는 처지지만 그 정도야 쉽게 외울 수 있다. 오가는 차 안에서 혹은 저녁을 준비하면서 흥얼거리다 보니 꽤 길고 어려운 가사도 이내 입력이 되었다. 이젠 즐기기만 하면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하여 온라인 팬카페에 접속한 순간! 난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한글로 쓰인 단어들인데 좀체 이해가 되질 않는 거다. 이런 말이 있었던가? 이런 세상이 있구나, 재밌는걸? 볼수록 읽을수록 그 재기발랄함에 눈이 가고 마음이 갔다.
그것은 신조어도 외래어도 아닌 사랑의 언어
그렇다, 얼핏 보면 이상하고 장난스러운 이 말들은 '내 스타'를 향한 사랑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제목의 '눈밭에서 포도알을 찾아라'는 이런 뜻이다. 이미 예매가 끝난 좌석은 눈처럼 흰색으로 표시되는데 가끔 취소 표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 뜨는 좌석의 색이 보라색이다. 마치 잘 익은 포도색 같다고 해서 포도알로 불린다. 해서 눈밭에 포도알을 찾는 일은 귀하디귀한 취소 표를 거머쥐는 일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하얀 눈밭을 구르다 보면 포도알을 거머쥔다'는 말이 오가기도 한다. 참 재밌는 표현이다. 맘처럼 티켓팅이 안 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이런 유머로 기분을 전환하는 팬들의 마음이 참 이쁘다.
그 외에도 아예 '콘서트 용어'라는 신조어 아닌 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선좌' 는 이미 누군가가 선택한 좌석이고, '앞구르기'는 원래 자리는 2, 3층 좌석인데 재시도 티켓팅을 통해 인기 많은 좌석 즉, 1층 표를 획득했다는 이야기란다. '의탠딩'은 또 무슨 말일까? 스탠딩은 우리가 아는 서서 관람하는 자리이다. 의탠딩은 의자가 있어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면서 콘서트를 즐기는 좌석을 뜻한다.
좀 더 쉬운 용어, 즉 라테 세대도 이해하는 말 중엔 취켓팅(취소 티켓을 구하는 일), 새고(새로고침), 첫콘(첫 콘서트), 중콘(콘서트 가운데 날), 막콘(콘서트 마지막 날), 올콘(첫콘, 중콘, 막콘 모두) 등이 있다. 이 모든 걸 이해하고 성공하면 비로소 성덕, 성공한 덕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휴~~ 따라잡기 벅차다.
하다 하다 모의고사까지
거기에 또 더해지는 기발한 아이템이 있다. 바로 모의고사다. 모의고사라고? 콘서트 한번 보는데 시험까지 치러야 한다고? 되물을 만도 하다. 이 해괴하고도 놀라운 시험에는 팬과 스타가 함께 하기도 한다.
가수가 그의 노래나 활동 궤적을 재미있게 풀어낸 특강 영상을 올리면, 팬들은 제법 어려운 모의고사로 화답한다. 시험문제의 단골은 떼창 영역이다. 어느 구절에서 떼창이 들어가야 하는지, 절대 따라 부르지 말 대목은 어디인지 등등 제법 어렵다. 또 빈칸에 들어갈 노랫말은 무엇인지, 이러저러한 이벤트는 어느 공연에서 선보였는지가 출제되기도 한다. 심지어 심화 영역과 일반영역으로 구분이 되어 있을 정도다.
시험이라면 지긋지긋하지만 이런 거라면 기꺼이 풀어보고 싶어졌다. 결국 반 이상을 틀리고 말았다. 참으로 유쾌하고 정성스러운 콘서트 준비가 아닐 수 없다.
그대도 내 행복 빌어주시오
그저 돈을 냈으니 편하게 박수나 치고 노래나 듣고 오는 시대는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팬도 스타도 있는 힘껏 준비하고 서로에게 뿌듯함을 선사하는 요즘이다.
그날 콘서트장 앞마당에는 커다란 우체통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요즘은 좀체 쓰지 않고 받지도 않을 팬레터를 받아주는 빨강 노랑의 우체통이다. 내가 쓴 편지를 읽어줄까? 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편지를 쏙 넣고 있었다. 나도 써 볼걸 그랬다.
잔나비의 노래 중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대도 내 행복 빌어주시오.'
그날 콘서트장에는 노랫말처럼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들로 뜨겁고 또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