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장벽] ① 클랙슨과 상향등에 묻힌 이동권, 장애인 차량 표식이 필요한 이유
'교통사고 15% 감소' 장애인 차량 표식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차별 빌미" 우려도 국내 장애인 주차 스티커 오남용 문제 심각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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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운전자의 일상은 우리가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매일 균형을 잡는 도전이다. 차에서 내리고 휠체어를 꺼내는 일조차 큰 난관이 된다. 좁은 주차구역, 닿지 않는 트렁크 버튼, 장애인이 운전 중이라는 사실을 알릴 수 없는 표식 부재까지 넘기 어려운 벽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느꼈던 잠깐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들에게는 일상이고 도전이다. 두 발과 두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해도 그들의 이동권은 모두와 평등하게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한데 현실은 권리조차 매 순간 도전이다. 여성경제신문이 장애인 운전자가 넘어야 할 벽을 조명하고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독자와 나눠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오사카 시내 미나미모리마치역 인근. 교통이 혼잡한 시간대에 한 장애인 운전자가 신호 대기 중 느린 속도로 차선을 바꾸려 시도한다. 그가 사용하는 핸드 컨트롤러는 하반신 장애로 인해 페달을 밟지 못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장비다. 이 막대기 하나로 브레이크와 엑셀을 제어한다. 오른손은 항상 핸들 대신 이 핸드 컨트롤러를 잡고 있어야 한다. 한 손 운전이 불가피하다. 자연히 차량 속도는 비장애인 운전자보다 느릴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운전자는 무분별한 클랙슨 소리와 상향등에 시달릴까 노심초사다.
"20년 전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땐 굼뜬 저에게 클랙슨 소리는 일상이었죠."
하지만 지금 그는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운전할 수 있다. 일본은 2002년부터 신체장애인 표식(Shintai Shougai Mark)을 도입해 장애인 운전자가 운전하는 차량임을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개선했다.
13년째 도쿄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청각 장애인 이나시 준이치 씨(54)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장애인 운전자 표식 제도가 생기면서 다른 차량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졌다"면서 "주차 대기를 할 때에도 차량 표식을 보고 길을 비켜주는 등 일상 운전 생활이 편리해졌다"고 했다.
15일 여성경제신문 특별기획 '장애인장벽' 취재를 종합하면 일본에서 시행 중인 신체장애인 운전자 표식 제도는 도로 위에서 장애인 차량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차량 운전석 내부 대시보드에 배치하는 '장애인 주차 표식'과 달리 차량 외부의 전면 및 후면 그리고 측면에 장애인 표식을 부착해 외부에서도 쉽게 장애인이 운전하는 차량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도입 직후 3년간 장애인 운전자 교통사고가 15% 감소했다. 고속도로와 같은 고속 주행 환경에서 추돌 사고가 크게 줄어들었으며 장애인 차량을 인지한 다른 운전자들이 더욱 신중하게 운전하게 됐다는 평가가 따른다.
후로다 겐지 오사카부립대 교수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차량 표식을 본 비장애인 운전자 중 약 73%가 방어 운전과 속도 조절을 더 신경 썼다고 답변했다. 이는 장애인 차량 표식이 도로에서의 안전을 증대시킨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일본 도로에서 장애인 차량을 본 운전자들은 차간 거리를 더 많이 확보하고 급격한 차선 변경을 자제하며 속도를 줄이는 등 긍정적인 운전 습관을 기르게 됐다는 것.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 장애인 차량 표식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장애인 운전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남아있다. 서울서 만난 목발 장애인 이성수 씨(62)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장애인 표식이 있다면 다른 운전자들이 나를 더 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핸드 컨트롤러를 사용해 한 손으로 운전하는 장애인은 신속한 대응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 차들의 무리한 차선 변경이나 추월이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장애인 차량 표식 도입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은 2023년 장애인 차량 표식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도입된 장애인 주차구역 허용 표식 제도만 해도 위조, 오남용 등 문제가 남아있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이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등편의법)과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도입된 장애인 차량 표식 제도는 차량 내부 대시보드에 배치하는 '장애인 추가 구역 허용' 표식 제도만 존재한다. 일본의 사례처럼 차량 후면과 앞면 외부에 배치하는 표식 제도는 없다.
문제는 이 제도 또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외부 표식 제도 도입 논의조차 어렵다는 제언도 나온다. 주차 표식 오남용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
한국에서 장애인 주차 표식 오남용 문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부터 6년간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서 불법 주차로 적발된 건수는 217만 건을 넘어섰다. 과태료만 해도 1851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문제는 장애인 주차 표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비장애인 운전자들이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제도 도입이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정책 개선을 막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부 장애인 운전자는 표식을 부착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받는다는 심리적 부담을 호소했다.
한 일본 운전자는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라고 말했다. 일부 비장애인 운전자들은 장애인 표식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식 개선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마츠다 히카이로 일본 교통안전연구소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장애인 차량 표식을 단순히 표시만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도로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운전 문화가 자리 잡도록 꾸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특히 비장애인 운전자들이 장애인 운전자의 신체적 한계를 이해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등의 배려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후로다 겐지 오사카부립대 교수는 "단순한 법적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며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 변화를 통해 장애인 차량 표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 대중교통, 운전면허 과정 등에서 장애인 차량 표식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장애인 차량 표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도로 환경에 맞는 세부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장애인 차량 표식 제도는 도로 안전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며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교통사고 감소와 도로 환경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차량 표식이 도입되면 장애인 운전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도로 위에서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신뢰를 바탕으로 더 자율적이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운전 경험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로 전체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장애인 운전자가 겪는 불안감이 줄어들면 그들이 도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고 제언했다.
일본 도쿄·오사카, 서울=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