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기업의 숙명?···삼성전자 맴도는 '모건스탠리'와 '인텔' 유령
이재용 재판에 수년간 혁신 발묶인 탓 자사주 매입 장부 마사지 의존한 인텔 빈 카운터스 함정에 빠져 몰락의 길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업황 회복에 힘입어 실적 개선을 예고하고 있지만 증권가의 비관적인 전망에 투자자들이 흔들리며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모건스탠리에서 발간된 부정적인 리포트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3분기 잠정 실적 발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테슬라의 로보택시 공개 이벤트가 하반기 증시 흐름을 좌우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만9500원까지 떨어지는 등 약세 흐름을 보이다 6만1000원으로 마감해 가까스로 5만원 마지노선을 지켰다. 반면 SK하이닉스(000660)는 2%대,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4%대 상승 중이며 현대차도 1%대 강세를 보였다.
국내 반도체 수출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메모리 반도체 풍향계'로 불리는 미국 마이크론도 6~8월 실적이 6년 만에 최대치를 찍으면서 주가가 우상향하는 추세 가운데 나홀로 부진이다. SK하이닉스 주가 역시 미국발 훈풍에 6.20%오른 18만4900에 마감했다.
지난 1개월 내 보고서를 발표한 증권사 18곳의 실적 전망치 집계 결과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0조7849억원, 10조3570억원으로 예상된다. TSMC에 밀린 파운드리가 고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DS(Device Solutions) 부문의 실적 대부분을 메모리가 담당하고 있다.
DS 부문의 경우 4분기 영업이익은 6조∼7조7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SK하이닉스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조1262억원, 6조7679억원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해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이 삼성전자를 추월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가 나홀로 부진을 겪는 이유는 수 년간 재판에 발이 묶인 이재용 회장의 경영 리스크과 반도체를 둘러싼 복잡한 대내외 환경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매출 규모만 보면 메모리 반도체 1위 자리를 SK하이닉스에 내어줄 수 있다는 분석은 기우지만 '반도체 겨울'을 예고한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는 삼성전자가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며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하는 고육지책(苦肉之策)까지 꺼내든 인텔과 비교되기도 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역시 올 상반기에 1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TSMC를 따라잡기 위해 제조 시설을 먼저 지은 뒤 주문을 받는 '셀 퍼스트' 전략이 실패하면서다.
TSMC 따라잡으려다 SK하이닉스의 HBM 공습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사업 대신 6세대 HBM4에 집중투자하며 메모리를 우선적으로 살린다는 전략으로 바꿨다. 최근 독일 뮌헨과 일본 도쿄에서 예정된 파운드리사업부 최대 행사인 '파운드리 포럼'의 오프라인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 행사로 전환했다. 평택캠퍼스의 파운드리 생산라인 중 일부 공정도 셧다운했다.
'인텔 인사이드'로 알려진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며 위세를 떨치던 인텔이 빠진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함정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미래 추세라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장부상 수치에만 몰입하는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의 함정도 삼성전자에 경고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콩 숫자만을 세는' 사업 효율화만 강조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인텔은 재무통인 로버트 밥 스완 (Robert Bob Swan) CEO 퇴임까지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 환원이란 보여주기 쇼를 진행했다. 지난 2010~2022년 인텔의 자사주 매입 총액 834억 달러로 순익 대비 매입 비율 47%에 달했다. 하지만 이 기간 인텔의 시가총액은 2010년 1149억 달러에서 2022년 1009억 달러로 줄었다.
기업 가치가 나중에 어떻게 되든 유통주식 수를 줄여 당장 주당순이익(EPS)을 올리는 자사주 활용 전략은 단기 투자자와 재무담당자에겐 매력적이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성공한 사모펀드가 임직원 수를 줄여 장부상 수치만 마사지하는 수법과 유사하다. 반면 이와는 반대로 자사주 매입이 0원이었던 TSMC의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631억 달러에서 6배인 3784억 달러로 뛰었다.
증권가의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는 한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다. 기업 오너가 이사회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 눈치를 보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국내의 반기업 문화도 한몫하고 있다. 특히 행동주의 성향에 가까운 모건스탠리 등 해외자본이 부정적 보고서를 내놓으면서도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 환원을 부추기는 것이 대표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 매입은 고려아연 사례와 같이 단기적으로 주가를 올려 공개매수를 방해하는 일시적 효과는 있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며 "인텔이 자사주 사들이기에 쓴 돈의 일부라도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파운드리에 투자했다면 지금도 굴지의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