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솜사탕처럼 달콤한 10분

[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탁구 초보자와 고수의 차이점은 잠자던 내 몸의 세포들이 몇 퍼센트 활동하는지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2024-10-29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지난 회에서 이어짐)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탁구장에서 고수와 함께 한 10분의 여운이 달콤한 솜사탕 맛을 떠올리게 했다. 손으로 뜯어 입에 넣으면 금방 녹아서 자꾸만 먹고 싶은 솜사탕. 그 솜사탕 맛을 자주 맛보고 싶었다. 내일은 어떤 고수와 탁구를 할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탁구장 위치는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였고 당시 나는 경기도에 살고 있었다. 탁구장을 나와 서울을 벗어나면 주변에 들판이 이어져 있었고 도시의 불빛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인가가 없었다. 열어놓은 승용차 문을 타고 들어온 시원한 바람이 계절의 맛을 느끼게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계절의 변곡점에서 찌르찌르르 풀벌레가 울었고 낮의 열기를 식힌 익숙한 흙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곳을 지나칠 때면 으레 음악을 틀었다. 밤벌레 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연주하는 자연 오케스트라에 웅장한 오페라 음악이 퍼지면, 핸들 위에 올려져 있는 내 손이 자연스럽게 춤을 추었다. 때론 빠르게 때론 미친 듯이 현란하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고 할 만큼 기분이 상쾌했다.

경쾌한 음악, 신나는 음악, 빠르고 강렬한 음악을 그날 기분 따라 들으며 나를 음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운동 후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는 그런 일상이 행복했다. 그 당시 나의 희망은 하루빨리 탁구를 잘해서 서울시 교육감배 탁구선수로 출전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삶의 활력소인 탁구 /사진=김정희

직장에서 퇴근하면 곧장 탁구장으로 갔다. 탁구화로 갈아신고 맨손체조를 가볍게 한 후 거울 앞에서 포핸드 자세를 연습했다. 그 후, 코치에게 레슨을 받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레슨이 끝나면 어느 고수가 나에게 구원(10분의 연습 시간) 의 손길을 내밀어줄까? 눈치를 보곤 했다. 다행히 고수와 눈이 마주치면 그분 경기의 심판을 자처했다. 경기가 끝나면 심판을 봐준 대가로 나에게 10분의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처음 고수와 10분 동안 탁구를 하고 난 다음날부터 나는 여러 명의 고수와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코치의 가르침대로 정확히 10분 동안 배웠다(왜 10분 동안 배워야 하는지 그 이유는 전편에서 말씀드렸다).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고수가 있어도 다음에 배우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끝냈다.

초보자들이 왜 고수와 탁구를 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다. 공이 날아오는 그 짧은 시간에 ‘뭔가 다르네. 내 몸이 지금 운동하고 있네’를 분명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보자와 같이하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초보자가 초보자와 탁구하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초보이기에 공을 어떤 위치에 보내면 상대방이 잘 치겠구나! 라는 생각보다 일단 공을 넘겨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정확한 위치에 공을 보내기가 어렵다. 또 공의 흐름이 자주 끊겨서 공을 치는 시간보다 바닥에 떨어진 공을 줍는 시간이 더 많다. 공의 세기도 미온하고 속도도 느리다. 시간은 더디 가고 땀은 나지 않는다. 표현은 할 수 없지만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온다.

그런데 고수는 초보자가 어떤 위치로 공을 보내도 받아넘기기 좋은 위치로 공을 보내준다. 그래서 고수와 공을 치면 ‘나도 잘 치네’라는 느낌이 들고 신난다. 짜릿하다. 내 몸에서 잠자고 있는 세포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기분이 좋아진다. 진짜 내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상급자가 보면 막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일 텐데. 삐악삐악 소리 내며 열심히 어미 닭의 이동 거리를 따라다니며 공을 받아 치려고 기(氣)를 쓰는 초보자.

탁구하면서 나타나는 모습 중 당황하는 모습 /사진=김정희

그날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 고수와 마주하게 되었다. 유달리 막걸리를 좋아하시는 분이었다. 왼쪽 네트 가까이 공을 보내면서 “요기 요기”, 오른쪽 모서리로 보내면서도 “요기 요기”를 외치면서 공을 이쪽저쪽 인정사정없이 넘기셨다. 내가 따라가기 힘든 위치로 공을 보내면서 “요기 요기”를 외쳤다. 나는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왼쪽, 오른쪽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요기 요기” 위치를 따라갔다.

그분은 탁구를 잘하려면 손이 아니라 발이 빨라야 한다고 했다. 탁구는 손으로 치는 게 아니라 발로 치는 것이라며. 그 말을 실감하며 공을 따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나의 힘겨운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는 여자분이 있었다. 환갑을 코 앞에 두고 있다는 일본 여인. 나는 탁구장에서 외국인을 만났다.

(다음 회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