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자사주 매입은 위법?···SM 사례는 '주식 취득' 유효
최윤범 회장 대응 당시 카카오와 흡사 자본시장법 위반은 공개매수와 별건 경영권방어 과정서 법적 절차가 중요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간의 경영권 분쟁이 5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한 '대규모 머니게임'이 됐다. 재계에선 어느 쪽이 승리하든 재무 건전성에 부담이 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다. 이런 가운데 최윤범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라는 이례적인 수단을 꺼내 들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전일 공개매수 신고 기한 이틀을 앞두고 기존 고려아연 주식 매수가를 주당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인상하며 금융감독원에 정정 신고서를 제출했다. 또한 최소 매수 조건으로 제시했던 발행주식 총수의 약 7% 이상 사들여야 한다는 조건을 삭제했다.
MBK는 이에 앞서 영풍정밀의 공개매수가도 최윤범 회장 측과 동일한 주당 3만원으로 인상했다. 이미 다량의 주식의 손바뀜이 이뤄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모든 주식을 더 사들여 주주총회 특별 결의가 가능한 지배력을 갖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최 회장 측에 20일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MBK는 장중에 영풍정밀과 고려아연 주식의 공개매수 가격 인상을 정정 공시하고 매수 기간을 10일 연장했다. 최 회장이 추가 자금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공개매수는 23일까지 이어지지 않고 MBK측이 바라는대로 14일 자동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2조7000억원의 대규모 자금을 최대 7%의 고금리로 차입했으며 이에 따른 연이자만 1500억∼18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영풍과 MBK는 부채비율 급증을 우려하며 자사주 매입이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해 카카오와 하이브엔터테인먼트의 SM엔터테인먼트 공개매수 사례를 보면 주식 취득 자체는 유효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하이브는 2023년 2월 10일부터 3월 1일까지 SM엔터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주당 12만원(전일 종가 9만 5800원 대비 21.8% 할증)에 SM엔터 주식 약 25%를 공개매수(기간 : 2023.2.10 ~ 2023.3.1)를 실시했다. 일반적으로 공개매수가 성공하려면 마지막 날까지 공개매수가격보다 주가가 낮게 유지돼야 한다. 주가가 공개매수가 위를 형성하면 기존 주주들의 매도 유인이 약해지고, 인수 의향이 있는 기업은 더 높은 기업결합(M&A)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결국 종료일 전 SM엔터 주가는 12만7600원까지 오르면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는 실패했다.
고려아연의 대응은 당시 카카오와 연합한 SM엔터가 취한 자사주 매입 전략과 유사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가 실패로 끝나자 카카오는 주당 15만원에 SM엔터 전체 발행주식총수 35%가량을 공개매수(기간 : 2023.03.07 ~ 2023.03.26) 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SM엔터 주가는 하이브의 대항공개매수 가능성이 제기되며 주당 15만원 전후를 등락했지만 실탄이 부족했던 하이브가 백기를 들면서 SM엔터는 카카오 품에 안겨졌다.
하이브와의 분쟁은 종결됐지만 금융감독원이 카카오가 공개매수 과정에서 신고되지 않은 특정 계좌를 통해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한 시세 조종을 적발했다. 고려아연이 출자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헬리오스 1호 유한회사'가 같은 해 2월 16일 IBK투자증권 판교점을 통해 800억원(2.9%)을 웃도는 SM엔터 지분을 매집한 것이 금융당국에 포착된 것.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은 이와 관련한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자본시장법상 형사처벌, 손해배상책임이나 과징금 부과 등(자본시장법 제176조, 제177조, 제178조의2, 제429조의2, 제443조)의 규정은 공개매수를 통해 취득한 주식의 유효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견해다.
고려아연은 지난 2일 1조원 규모 회사채 발행, 1조7000원 한도 금융기관 차입 등 총 2조7000억원 규모의 단기 차입 확대 계획을 공시한 바 있다. 이 금액은 자사주 취득 규모와 일치하지만 영풍과 MBK는 임의적립금을 활용한 자사주 매입 자금 조달이 주주총회 승인 없이 이뤄질까 우려하고 있다.
법정적립금이 아닌 임의적립금은 배당가능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고려아연은 정관에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익잉여금을 처분할 때 해외투자적립금, 자원사업투자적립금을 별도 항목으로 명시하도록 하는데 상반기 말 기준 각각 3조4140억원과 3조22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MBK와 영풍은 회사 재산의 사외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선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판례도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절차적 위반이 있는 경우 이사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지난 2019년 9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현 HMM)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금융사 우호지분 확보 차원에서 현대상선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총수익스와프(TRS)를 체결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미칠 손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수집·조사하고 검토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법원도 2023년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그룹이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그룹 오너가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