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가둔 역사 현장, 철거 위기···"성병관리소 보존" 청원 5만 돌파

동두천 옛 미군 기지촌 개발 "국가 폭력과 만행 보전돼야"

2024-10-02     이상무 기자
8월 14일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입구의 옛 성병관리소가 폐허로 남아 적막하다. /연합뉴스

경기도 동두천시가 과거 미군 기지촌 여성 성병 관리 목적으로 정부가 운영하던 건물을 철거하고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하자 논란이다.

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미군 '위안부' 기지촌에 대한 국가의 사과 촉구와 경기 동두천시 기지촌 성병관리소 철거 반대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국회 청원에 이날 오후 현재 5만 3069명이 동의한 상태다.

청원인은 "'기지촌' 성병관리소는 단순한 '흉물'이 아닌 당시 여성들에게 저질러진 국가의 폭력과 만행의 역사를 담아 보전되어야 할 장소"라며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조례' 에 의한 월 1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제외 배상이 없는 바 역시 국가의 정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경우 공식 접수돼 소관위원회 회부 및 심사 기회를 얻게 된다. 소관위 심사에서 정부 또는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되며 이후 후속절차가 진행된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6·25 전쟁 뒤 미군 상대 성매매 업소가 들어서자 1973년 당시 정부가 성매매 종사자들의 성병 관리를 위해 소요산 입구에 설치했으며 1996년 폐쇄됐다.

감금된 여성들은 적절한 의학적 절차 및 검사 없이 투여된 고용량의 페니실린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견뎌야 했다.

해당 시설의 별명인 '몽키 하우스'는 여성들이 창문에 매달려 나가려고 소리치는 모습이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2022년 9월 대법원은 성병관리소를 운영한 게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점과 기지촌 여성들을 그 폭력의 피해자라고 판결했다.

동두천시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2월 성병관리소 건물과 땅을 매입했으며 이달 중 업체를 선정해 철거에 나설 계획이다.

이를 두고 인근 상인과 주민들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공동대책위원회는 아픈 역사 현장인 만큼 보존해야 한다고 규탄하며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에 수용됐던 한 여성은 전날 문화제에 나와 "가난한 나라에서 형제들은 많고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해 그래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기지촌에서 일했다"며 "21살 어느 날 밤 길을 가다가 승합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검진증을 요구했는데 없다고 하자 차에 태웠고 다른 언니들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에 떨면서 도착한 곳은 산속 성병관리소였고 건물 2층 지저분하고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잤다"며 "다음날 산부인과 검진 결과 성병에 안 걸렸는데도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 기절할 정도로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나 걷지 못할 지경인데도 일주일 동안 원숭이처럼 갇혀 있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성병관리소 철거는 기지촌 여성들을 강제로 가둬놓고 감시하던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저 건물을 바라볼 때 가슴 저리게 아프지만 후대를 위해 남겨 그것을 보여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눈물을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