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 영풍정밀 5% '불기둥'···고려아연에선 자사주 매입 신경전

가격 20% 차이···안분비례 시 MBK 유리 임의적립금 6조원 전환 주주총회 거쳐야

2024-10-02     이상헌 기자
강성두 영풍 사장이 11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영풍정밀에 대한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와 최윤범 회장 측의 대항공개매수가 2일 펼쳐지면서 주가가 '불기둥'을 그리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기준 영풍정밀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7.91% 오른 2만73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개장 직후 11%대 치솟기도 했다.

고려아연 임직원이 최근 설립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제리코파트너스는 금융감독원에 21일까지 영풍정밀 지분 393만7500주를 주당 3만원에 공개매수한다고 보고했다. 이는 MBK·영풍 연합의 공개매수가(2만5000원)보다 20% 높은 수준으로 전체 발행 주식의 25%에 해당하며 총 1181억원이 투입된다. 이를 위해 881억2500만원을 최소고정금리 5.7%로 대출해준 하나증권이 사무취급기관이다.

장형진 영풍 고문 측이 지분 21.25%를, 최윤범 회장 측이 지분 35.45%를 보유한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향방을 좌우하는 최대 격전지다. 다만 매수 가격은 최 회장 측이 3만원을 제시해 MBK의 2만5000원 대비 20% 높지만 매수할 물량이 MBK의 57.6%에 불과해 안분비례에 따른 유불리를 따져봐야 한다.

즉 MBK는 장씨·최씨 두 가문이 소유한 주식을 제외하고 잔여 주식을 전부 사들일 계획이지만, 최 회장 측은 일부만 매수하는 셈이다. '안분비례'란 제한된 수량을 모든 응모자에게 비율에 맞춰 나누어 매수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 회장 측에 팔겠다고 응모한 주식 수가 매수 제안 수량을 초과할 경우 100%를 매수할 수 없고 일정 비율 만큼만 매수된다.

예를 들어 1000주를 가진 투자자가 최 회장 측 공개 매수에 응하면, 1000주 중 57.6%인 576주만 3만원에 거래돼 1728만원을 받을 수 있다. 남은 424주는 팔지 못하고 기존 주가(약 9952원)로 거래된다. 이에 따라 약 투자자에게 들어오는 금액은 역 2150만원 가량이다. 반면 MBK에 1000주 전량을 2만5000원에 팔면 2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서 전량 매수를 보장하는 MBK의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이 가격은 낮지만 더 안정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최 회장측의 영풍정밀 지분이 장형진 고문측보다 14.20%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MBK가 영풍정밀 지배권을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선 기한을 10일 연장하더라도 매수가 재상향을 통한 굳히기가 필요할 수 있다. MBK는 공개매수 기간을 이달 6일까지로 정했는데 5일과 6일이 주말이라 실질적인 청약 종료일은 4일이다. 이런 가운데 공개매수가를 도중에 상향하면 기간은 정정 신고일로부터 10일 연장된다.

고려아연이 지난 11월 24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공개매수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만약 연장 기간 중에 최 회장이 추가 실탄을 마련하지 못하면 MBK측 공개매수는 자동으로 성사되는 시나리오다. 공개매수는 장외거래라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은 보통 장내에서 매도하는 경향이 크다. 이에 따라 장내이선 이미 양측의 지분 확보 전쟁이 불 붙은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MBK 측은 이와 관련해 "시장 움직임을 일단은 지켜볼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고려아연에선 자사주 매입을 통한 경영권 방어를 시도하는 최 회장의 전략을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가 이날 영풍 측이 최윤범 회장 측을 상대로 낸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고려아연이 조만간 이사회 의결을 거쳐 자사주 매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면서 68만9000원대로 내려 앉았던 주가가 오전 11시 기준 69만3000원까지 회복됐다.

다만 상법상 자사주 취득은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하게 된 규정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배당가능이익은 자본총계에서 신종자본증권부터 자본금, 자본잉여금, 이익준비금, 해약환급금준비금(보험사의 경우), 미실현이익 등을 뺀 금액이므로 이를 초과해 매입하는 행위는 무효다. 이를 근거로 MBK측은 "최 회장측의 자기주식 취득금액 한도는 586억원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려아연은 정관에서 이익잉여금을 처분할 때 해외투자적립금, 자원사업투자적립금을 별도 항목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상반기 말 기준 각각 3조4140억원과 3조2200억원에 달한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법정적립금이 아닌 임의적립금은 배당가능 이익으로 전환할 수 있지만 사외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이사회가 아닌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