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과 단절된 가족···'회복의 열쇠' 부모 교육 절실

고립·은둔 청년 약 54만명 추정 부모 교육 통해 소통·고립 개선 "가족은 1차 지지 체계, 영향 커"

2024-09-30     천보영 인턴기자
'2022년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의 약 70%가 "함께 있어 줄 사람이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밖에 나가는 것도 힘든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냐'는 가족의 말에 더 괴로워요."

"제 아이가 방에서 7개월째 안 나오고 있어요. 이젠 저까지 우울하네요."

취업난 등으로 고립·은둔 청년 문제가 사회 문제로 지속되고 있다. 청년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지원해 고립·은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고립·은둔 청년은 2021년 기준 약 54만명으로 추정되며 가족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고립·은둔 청년의 1차 지지 체계는 가족이며 부모가 자녀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고립이 심화할 수 있어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청년재단의 '청년 고립의 사회적 비용' 연구에 따르면 고립 청년 문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약 6.7조원에 달했다. 건강·복지 비용도 연간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사회 전반의 활력 저하와 가족 해체 등의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종합적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같은 해 4월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 및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선 고립·은둔 청년의 수가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은둔의 지속 기간은 △6개월 미만(34.6%) △1년 이상 3년 미만(31.5%) △5년 이상 장기 은둔(6.6%)이었다.

고립·은둔 청년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 /서울시

'2022년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 가족에게 △고립·은둔에 대한 이해 프로그램(22.4%) △부모와 자식 간 가족 상담(22.1%)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은둔 청년의 약 70%가 "함께 있어 줄 사람이나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3~4명은 가족과의 친밀감과 교류 빈도를 묻는 항목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이 서울시 청년 대비 약 3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원만하지 못한 가족관계는 탈 고립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복지부 '2023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선 지난 2주간 가족이나 친척과 교류가 없었다는 비율은 16.8%로 일반 청년(1.5%)의 10배에 이르렀다. '현재 상황을 본인·가족 모두 외부 도움이 필요한 문제로 본다'는 응답이 28.2%인 반면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응답이 40.9%로 조사됐다. '아버지, 형제자매와 관계가 안 좋다(매우 안 좋다 포함)'는 응답은 각각 20.2%, 15.0%로 나타났다. 이에 복지부는 "가족이 탈 고립의 1차 지지체계이면서 장애물일 가능성이 있다. 가족도 고립의 또 다른 취약계층일 것"으로 분석했다.

원만하지 못한 가족관계는 탈 고립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가족관계가 탈 고립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에 정부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지난 20일 서울시는 '고립·은둔 청년 부모 교육 3기'의 참여자를 내달 7일까지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번 교육은 자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일상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됐다. △자녀의 심리적 특성과 행동 이해 △효과적인 소통 방법 △자녀의 사회적 재활을 위한 실질적인 전략 등을 포함한다. 청년재단은 고립 청년과 부모를 위한 '가족이음 4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자녀의 고립으로 인한 고민을 나누고 싶은 부모를 대상으로 하며 10회의 교육과 캠프를 무료로 제공한다.

오재호 경기연구원 자치행정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해 연구원에서 발행한 이슈&진단 보고서 '청년의 고립·은둔, 진단과 대책'을 통해 "대부분의 은둔형 외톨이는 은둔에서 벗어나 사회와 관계를 맺고 소통하길 원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사회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당사자를 끌어내기 위하여 설득하거나 논쟁하기보다 부모가 전문가와 상담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부모 역할을 인식하고 건강한 가족을 구성하도록 예비 부모 교육을 활성화함으로써 개인의 고립과 은둔이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부모 교육이 효과적인 이유는 가족이 청년의 1차 지지 체계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복지국가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고립·은둔 청년은 삶의 여러 장면에서 실패 경험을 쌓아왔다. 가족을 포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 체계가 없을 때 고립되거나 은둔하게 된다"며 "그럼에도 청년들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한다. 청년들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가장 편하게 즉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모를 포함한 가족이다. 부모 교육이 효과적인 이유는 가족이 청년의 1차 지지 체계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고립·은둔 청년의 대부분이 미혼이기 때문에 가족의 영향력이 크다. 부모가 고립이나 은둔 청년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녀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면 관계가 어긋날 수 있다. 이는 청년들에게 또 다른 실패 경험으로 남아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실패할 수 있다"며 "가족 구성원인 고립·은둔 청년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도 매우 힘들다. 이 상황에서 가족의 도움이 있다면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서울시와 청년재단의 고립·은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은 서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청년미래센터'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인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정부 지원 사업에서 가족 지원을 함께 고려해야만 고립·은둔 청년들이 더 신뢰할 수 있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부모와 청년을 함께 지원하는 방식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부모와 청년을 따로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청년과 부모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은 경우에는 서로를 대면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부모 교육을 포함한 가족 지원은 꼭 청년과 함께할 필요는 없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