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상식 경제' 앞세우며 해리스가 해냈다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카네기 멜런대학 연단서 정책 설명 감세와 동시에 제조업 지원 약속 부동산 등 바이든 맹점 해결 의지 '전통 민주당' 귀환에 '친기업' 더해

2024-09-30     김성재 퍼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지난 25일 미국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의 철강 도시 피츠버그에 소재한 명문 카네기 멜런대학의 연단에 섰다. 모호하고 알맹이가 적어 트럼프에 크게 뒤진다고 평가받았던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연단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긴장이 가득할 것이란 세간의 예상과 달리 여유가 흘러넘쳤다.

지난 25일 미국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의 철강 도시 피츠버그에 소재한 명문 카네기 멜런대학에서 정책 설명회를 했다. /AFP=연합뉴스

흡사 어려운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해서 제대로 준비해 온 학생의 모습이었다. 경제는 그의 전공 분야가 아니지만 캘리포니아 검찰총장 당시의 경험을 살려 생생하고 피부에 와닿는 설명을 이어갔다. 지루한 설명이 아니라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실례를 통해 경제의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할 방도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대안을 제시했다.

오랜 기간 법정에서 치열한 논리 다툼을 펼쳤을 주 법무장관의 진면목을 십분 발휘했다. 하지만 관건은 그의 화려한 언변이 아니었다. 미국 유권자들은 이날 TV 앞에서 그가 정말 미국인이 처한 어려운 경제문제를 이해하고 있고 이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봤다. 여기에는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소상공인 그리고 기업가들이 모두 포함됐다.

과연 해리스는 그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그것을 궁금해했다. 해리스 후보는 특유의 공감력을 살려 연설의 서두를 장식했다.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실업률이 낮은 상태로 유지되고 인플레이션도 상당히 완화되었다는 자화자찬을 했지만 미국인들이 매우 어려운 경제 여건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는 바이든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후보답게 이들 계층을 지원할 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바이든이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주택 공급난을 직접 파고들었다. 현재의 집값 고공행진과 꺾일 줄 모르는 월세 문제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공급 부족에 있음을 직시했다. 여러 정책 수단을 동원해 주택 공급을 300만 호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고물가로 가처분소득이 대폭 줄어든 미국의 1억 중산층에게 감세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모기지 대출을 빌리려면 필요한 현금인 다운페이먼트(계약금)를 2만5000달러까지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 지원하겠다고 했다. 통상 집값의 20%를 다운페이먼트로 내는 현실을 감안하면 주택 구입자의 필요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신생아를 출산한 가정에 6000달러를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하고 의료비 부담으로 고통을 겪는 고령층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독점력을 활용해 판매가격을 올리는 기업의 이른바 가격 가우징(gouging) 행태도 단속하겠다고 했다. 사회주의적 가격 통제를 하려 한다면 비난을 의식한 듯 자신이 주 법무장관 시절 기업을 단속한 적이 있었다는 실례를 들었다.

해리스는 이런 자신의 정책 방향을 상식에 근거한 것이라 했다. 실제로 해리스의 경제정책은 '공정 경제' 또는 '상식 경제'라 부를 만하다. 기업의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는 동시에 서민 가계에 직접적 도움을 줘서 미래 경제의 활력을 살리는 '전통적 민주당 스타일'이 돌아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해리스는 주택 공급 부족 문제도 파고들었다. /로이터=연합뉴스

해리스는 성장 문제도 도외시하지 않았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짚어줬다. 그는 미국 경제가 일류로 통하는 이유가 특유의 혁신성에 있음을 강조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얘기한 이노베이션이 없었다면 미국 경제는 성장하지도 현재의 강력한 주도권을 쥐지도 못했을 것임을 통찰했다.

그는 그 성공의 열쇠를 언급한 다음 이를 더 확장하기 위해 소상공인과 성장기업에 대한 세액 공제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 약속했다. 자본이 부족해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소득공제도 큰 폭으로 늘일 것이라 말했다. 이를 통해 수천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미국 산업 성장의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던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과 링컨 대통령 그리고 존 F. 케네디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면서 자신도 혁신을 통해 미국 산업의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바이오, 우주공학, 양자컴퓨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 선언했다.

해리스는 이런 접근이 성장 정책과 다름없음에도 '기회 경제'라고 명명했다. 성장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거대기업에 더 큰 혜택을 주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정책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트럼프와 해리스 모두 미국 산업의 부활을 목표로 하지만 양자의 접근법은 매우 다르다. 트럼프가 법인세 인하와 고율의 관세 부과를 통해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노린다면 해리스는 선별된 성장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통해 제조업을 지원하려고 한다.

또한 해리스는 미국 제조업이 붕괴하면서 지역 경제도 공동화했음을 의식한 듯 제조업 부활을 통한 지방 경제 활성화를 약속했다. 그는 이를 '팩토리(공장) 타운'의 창출로 표현했다. 팩토리 타운을 지원해 근로자 가구의 복지를 강화하고 노동 계층의 생활 안정을 이끈다는 민주당의 전통적 경제정책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해리스는 미국 제조업이 붕괴하면서 지역 경제도 공동화했음을 의식한 듯 제조업 부활을 통한 지방 경제 활성화를 약속했다. 그는 이를 '팩토리(공장) 타운'의 창출로 표현했다. /AFP=연합뉴스

그러면서도 해리스 후보는 정책이 가진 한계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부가 지원 정책을 내도 '레드 테이프'라 불리는 각종 세부 규제에 걸려 차일피일하기가 일쑤임을 간파했다. 그는 이런 레드 테이프를 대폭 줄여 사업하기 좋은 경제를 만들 것이라 약속했다. 마치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정부 그 자체가 문제'라고 얘기하듯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민주당 후보가 규제 완화를 들고나온 것은 매우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그로 인해 해리스의 경제정책은 중도를 넘어 친기업적인 중도 보수로 가까이 가게 되었다. 이는 당연히 기업인들의 지지를 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해리스는 과거 바이든이 강조했던 그린 경제와 기후 문제 등 진보적 색깔이 강한 정책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이런 식으로 해리스는 각 경제주체가 듣기에 좋은 정책을 나열하면서도 나름대로 논리를 갖춰 설명해 성공적인 경제 아젠다를 만들어냈다. 트럼프의 정책은 부자만 위하는 정책이라고 조목조목 따졌다. 이로부터 해리스는 경제정책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정책에서 트럼프에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도 보인다. 성공적인 정책 설명회였다고 할 것이다.

물론 해리스 정책의 문제점도 없을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해리스의 세액공제를 통한 제조업 지원에 향후 10년간 1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라 예상했다. 두 후보 모두 정부의 재정 건실화에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과연 해리스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성장과 균형재정 달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재 퍼먼대 경영학과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및 국제투자 업무를 담당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예금보험공사로 전직해 적기 정리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2005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코넬대학교 응용경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재무금융학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대학에서 1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과 금융리스크 관리가 주된 연구 분야다. 저서로 ‘페드 시그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