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철의 무대리뷰] 이렇게 화려하고 재미있는 발레가 있네!···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풍부한 예술성에 더해진 화려한 무대 32명의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군무까지

2024-09-28     한형철 초빙기자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발레 <라 바야데르>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급 대작이다. 캐스팅 인원도 많을뿐더러 이국적이고 화려한 무대장치 및 의상 등으로 인해 제작비도 매우 많이 들고 난도도 높다. 무용수의 연기력과 테크닉, 깊은 예술성이 요구되어 발레계에서도 매우 까다롭게 여기는 작품이다. 

인도 황금 제국을 배경으로 힌두사원의 무희 ‘니키야’와 라자왕이 호감을 갖는 용맹한 전사 ‘솔로르’ 그리고 솔로르를 사랑하는 공주 ‘감자티’와 니키야에게 욕정을 품은 승려 ‘브라만’이 나온다. 이들의 4각 관계 속에 사랑과 배신, 복수와 용서가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 첫날(27일)의 무대를 감상했다.

<라 바야데르>는 인도 전통춤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특유의 팔과 손동작이 많아 무용수의 섬세한 감정선과 연기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공연 시작 전에 문훈숙 단장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작품 소개와 함께 다양한 마임을 미리 알려주는데, 잘 기억해 두면 발레 감상에 꽤 유익하다. 

1막은 솔로르(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두고 니키야(강미선)와 감자티(이유림)가 신분을 넘는 팽팽한 신경전을 보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이때 한경arte필하모닉(지휘 지중배)의 음악은 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니키야는 이 공연에서 총 4벌의 의상을 입고, 머리 수정도 3번이나 하고 나오는데, 그야말로 퀵 체인지의 연속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군무 장면 /유니버설 발레단

이 작품은 어린 자녀와 함께 보아도 좋을 듯하다. 특히 2막의 솔로르와 감자티의 결혼식 장면에는 높이 2미터, 무게 200킬로그램에 1미터짜리 코가 움직이는 대형 코끼리가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물동이 춤, 부채춤, 앵무새 춤, 고난도 테크닉을 보여주는 황금 신상 춤까지 연이어 춤판이 벌이는데, 음악도 발레도 경쾌하고 발랄하다. 

감자티는 ‘결혼식 파드되’에서 무용수의 뛰어난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공중에서 두 다리가 만났다가 한 다리로 떨어지는 가브리올 점프를 시작으로 에티튜드, 피케와 쉐네 등 턴이 이어졌다. 마무리는 두 다리를 크게 벌려 멀리 뛰어오르는 그랑 쥬테였는데,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하여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주역은 니키야였지만 이 장면에서는 감자티가 주역으로 느껴졌다.

 3막 ‘망령들의 군무’ 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3막의 ‘망령들의 군무’는 이 작품의 백미이며 ‘백색 발레’(Ballet Blanc)의 독보적인 장면이다. 무대 위에 둥근 달이 신전을 몽환적으로 비춘다. 하프가 연주하는 서정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새하얀 튀튀와 스카프를 두른 32명의 무용수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교한 춤을 보여주었다.

이 군무는 아라베스크 동작을 반복하며 느리게 진행하는데, 엄청난 집중력과 지구력이 요구되는 고난도의 춤이다. 화려한 행동보다는 단순하고 느린 동작이 더 힘들고 어려운 법이 아닌가! 기자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선두에 등장하는 무용수의 아라베스크를 손을 꼽아 세었다. 모두 38회였다. 더구나 경사진 곳을 내려오면서 하는 동작이니 더욱 힘들 것이다. 선두의 무용수는 더욱 긴장과 부담을 느꼈을 터, 그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낸다.

29일 저녁 공연에는 내년에 명문 마린스키발레단 입단 예정인 전민철이 이유림과 함께 주역을 맡아 공연한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5회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