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백일장] 요양 보호사로서의 나의 보람

제2회 해미백일장 이희선 님 출품작

2024-09-26     최영은 기자
어르신과 함께 스트레칭하는 모습 /이희선

유년 시절의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늘 어르신들의 담소 장소였고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오시는 방물장수 할머니의 숙박 장소이기도 하였다. 문맹자가 많던 농촌 어르신들의 통신수단이 편지, 동네에 하나 있는 호출 전화이던 시절에 작은고모는 친절한 어르신들의 편지 대필자였다. 그런 작은고모가 시집을 가고 어린 4학년 소녀인 내가 그 대필자의 역할을 이어받았다.

당연히 나는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의 바람, 마음,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무엇을 도와드릴지를 배우고 익히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의 요양 보호사는 어릴 적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과는 조금 다르지만 내가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에 있어서는 닮은 점이 많아서 좋다.

입소한 어르신이 오시면 나는 무조건 어르신들의 가족 이름, 어떤 일을 하셨는지, 고향이 어디인지 등 마지막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을 잘 챙겨드리기 위해서 꼭 외워둔다. 근무 틈틈이 한 분 한 분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회복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지금의 모습에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남자 어르신들은 이틀 간격으로 면도를 해드려서 깔끔한 모습을 유지해 드린다. 면도를 해드리고 ‘충성!’ 거수경례를 하고 군번을 여쭤보면 여지없이 ‘10194682!’ 외치면 나는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군번을 외우실 때는 매번 늠름한 군인의 모습이 되시곤 한다.

새로 입소하신 인예 어르신은 출근해서 ‘엄마! 보고 싶었어요. 엄마는요?’ 인사드리면 ‘엄마도 많이 보고 싶었어’하고 대답하신다. 심지어는 사랑한다고까지 말씀하셔서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가족들도 기뻐하고 웃으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래서 면회 오셨을 때 직접 ‘사랑해’라는 표현을 보여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나의 작은 역할이 어르신의 변화에 기여한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어르신들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신다는 증거인 것 같다.

요양 보호사는 어르신들의 기저귀, 목욕, 식사 등 기본적 욕구와 필요를 해결해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상의 업무이지만 가족처럼 손잡아 드리고,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우리의 부모가 현재의 모습을 잃어가는 과정을 안타깝게 바라보듯 바쁘지만 마음을 다해서 어르신들이 ‘현재 상태’에 오래 머무르실 수 있도록 그래서 나머지 삶의 소풍이 더 행복해질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