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패션 아이템이라더니···거리를 휩쓰는 못난이 신발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팬데믹 이후 인기 끌기 시작한 크록스, 이제는 슈즈 꾸미기인 '슈꾸' 돌풍으로 젠지세대 사로잡고 점차 영역 확장 중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패션 아이템이다.'
'패션을 욕보이는 어글리 슈즈다.'
'언급할 가치도 없다.' 등등···.
패션 종사자들로부터 온갖 험담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거리를 활보 중인 신발이 있다. 이제는 거의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한 '크록스'가 그것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내 눈엔 영락없는 고무신이었다. 그것도 멍청하게 크기만 한 항공모함 같은 통 고무신!
도대체 무슨 매력?
동생네를 만날 때면 항상 시선이 발로 간다. 가족 모두가 그 문제의 못난이 신발을 신고 나오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쁘지도 않은 걸 왜 신느냐고 물어봤다. 고등학생인 남자 조카의 답은 간단했다. 손을 대지 않고도 신고 벗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 번에 쓱 신고 휙 벗는 게 매력이라고 한다.
한창 멋 부릴 나이인 사춘기 여자 조카의 답은 또 달랐다. 신발 등에 뚫린 13개의 구멍을 개성껏 꾸밀 수 있는 게 최고라고 했다.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송송 뚫린 구멍을 차지하고 있는 온갖 액세서리들이.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상의는 교복, 하의는 체육복 그리고 크록스로 완성되는 게 요즘 여학생 패션이라던가?
음~그렇구나. 아! 중년에 접어든 동생이 저걸 신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편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신발의 탄생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청년들에 의해 만들어진 크록스는 처음에는 물놀이용으로 선보였다고 한다. 카리브해로 보트 여행을 떠났던 세 친구는 자꾸만 물이 차오르는 신발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신발 등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물이 잘 빠질 거라는 단순하고도 실용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게 2002년 크록스(Crocs)의 탄생 일화다.
그 인기에 힘입어 유사한 디자인의 신발이 탄생하였지만, 대중에겐 크록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초기에는 대중들, 특히 패션 종사자들은 못 생긴 이 신발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낚시나 원예 활동을 할 때 신는다면 제격이라는 생각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우리에게도 친근한 저스틴 비버, 드류 베리모어 등 유명 스타들이 '못난이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세는 돌풍을 몰고 와 오스카 시상식 레드카펫에도 등장하고야 말았으니, 신발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쯤에서 악평을 서슴지 않던 비평가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꾸미는 즐거움도 한몫, 이제는 슈꾸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을 휘저어 놓았다. 그 가운데에는 크록스의 비상이 있다. 외출을 삼가고 대면 활동이 감소하자 편안한 패션이 인기를 끌게 됐다. 레깅스나 조거팬츠, 후드 셔츠의 비상이 그걸 말해준다. 자연스레 편안한 신발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어느새 못난이 고무신 같던 크록스는 일상 패션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위 젠지세대-이젠 세대를 구분하기도 벅차다-들에게 매력적인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이 가능한 신발이라는 점이 딱 들어맞았다.
※ 젠지세대: 제너레이션 제트(Generation Z)의 줄임말, 1990년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일컫는 말.
꾸미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에 이만한 것이 없었나 보다. 미관상으론 볼썽사나운 신발 등의 구멍, 13개의 구멍은 젠지들의 개성 표현 방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지하상가나 백화점엔 어김없이 '지비츠 '매장이 자리한다. 지비츠(Jibbitz Charms)···. 나 같은 세대라면 처음 들어 볼 수도 있는 말이다. 쉽게 말해 신발 참 혹은 귀걸이라고 할까? 신발 등에 저마다의 개성으로 고른 지비츠를 끼워주는 것이 트렌드다.
처음엔 한 주부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는데 크록스의 인수로 시장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그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각종 애니의 피규어부터 앙증맞은 미니 푸드, 반짝이는 보석까지 고르기도 쉽진 않겠다.
온갖 줄임말이 아직도 어색한 내게 '슈꾸'라는 말은 더욱 그렇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정도 겨우 알던 처지여서 슈꾸(슈즈 꾸미기)라는 말은 우습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어쨌든 못생겼다느니 태어나지 말아야 했을 패션 아이템이라느니 하는 악평을 듣던 크록스는 개성 만점 신발로 변신에 성공했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본 젊은이의 발등엔 먹다 남은 도넛이 떨어져 있었다. 칠칠치 못하다고 하마터면 알려줄 뻔했다.
웬걸? 자세히 보니 그건 '슈꾸'였다. 반쯤 먹다 남은 도넛 말고도 미니 캔콜라와 유리컵, 사탕 모양의 지비츠로 꾸민 커스터마이징 신발이었다. 유쾌한 멋 내기에 보는 나도 즐거웠다.
너무 못생겨서 귀엽다는 이 신발은 병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언제나 바쁜 의사, 간호사들의 뜀박질(?)을 책임져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학교 앞 버스정류장엔 온통 이 신발 차림의 학생들로 북적인다.
인기가 많은 만큼 뒷얘기도 풍성하다. 사이즈를 줄이고 싶으면 끓는 물에 담그면 된다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린다는 속설이 있는가 하면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말끔해진다는 얘기도 있다. 더불어 크록스를 가장 즐겨 신는 동네는 광주광역시라는 재밌는 통계까지 있다.
하이힐은커녕 5㎝ 굽도 버거워하던 나였지만, 못생긴 고무신 같은 저 신발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나도 신어볼까? 나도 슈꾸라는 걸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유행이라는 건 역시 태풍보다 강력함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