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권 칼럼] 귀신은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

[백재권의 세상을 읽는 안목] 한반도의 신기와 영적인 전통 제사와 무속의 중요성 조상 기리기의 현대적 의미

2024-09-18     백재권 글로벌사이버대 특임교수
후손들의 성묘 모습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풍수지리(風水地理)로 볼 때 신기(神氣)가 강한 지역에 위치한다. 즉 한반도는 하늘로부터 영적인 기운이 강하게 내리쬐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특징이 있는 곳에 거주하면 신령스런 천기(天氣)와 지기(地氣)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 우리 민족은 영감(靈感)이 발달하고 영특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많이 태어난다. 또한 자연스레 다양한 종교와 무속이 활성화된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사후세계를 현실 세계와 동떨어졌다고 보지 않았다. 그래서 죽은 자를 위한 제사를 중하게 여긴 것이다. 사후세계의 귀신도 산 사람과 비슷하게 예우를 해준다. 차례, 제사, 성묘, 49재, 굿 등이 있다. 영화 <파묘>가 인기를 끈 이유는 배우의 연기력과 스토리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우리들 내면에 존재하는 궁금증을 다룬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대체로 오감이 발달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영감의 에너지가 곁가지로 뻗어나가 성립된 것이 무속(巫俗)이다. 무속에는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신기(神氣)가 나타나고 결국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경우가 심심찮다. 특히 연예인들에게 이런 사례가 많이 나타난다.

무속과 동떨어진 일반인들도 신기 있는 사람처럼 꿈이 잘 들어맞는 경우가 흔하다. 일례로 문중의 어른들이 조상 묘들을 이장하려고 날을 잡았는데 죽은 부모나 할아버지가 나타나 하소연하는 꿈을 꾸는 경우가 그것이다. 만약 꿈에 나타나 "그곳으로 이사 가기 싫다"고 말하거나 안 좋은 표정을 지으면 이장을 재고함이 마땅하다. 그대로 이장했다가는 집안이 풍비박산 나거나 우환이 연속되기도 한다.

이장을 통해 '명당 터'로 옮기면 돌아가신 혼백이 편안해한다. 그럼 후손들 꿈에 밝은 표정으로 나타나거나 고운 옷을 차려입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기도 한다. 반대로 '흉한 터'로 잘못 이장하면 꿈에서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후손을 노려보기도 한다.

필자의 지인 중에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옷이 다 젖은 채로 나타나 춥다고 하소연하길래 불길한 느낌이 들어 파묘를 해보니 관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그 후 좋은 자리에 이장을 해주니 며칠 후 꿈에 고운 옷을 입고 나타나 웃는 모습을 보여 준 후로는 더 이상 꿈에 나타나지 않는다"며 신기해했다.

추석을 맞아 많은 이들이 고향을 찾고 조상을 기리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나 선조들의 은혜를 갚는 가장 큰 방법은 명당(明堂) 터에 체백(體魄)을 모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풍수지리에 안목(眼目)이 높은 지관과 인연이 닿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해무득한 화장을 하거나 양지바른 선산에 모시는 것이 옳다. 

부모나 조상의 은혜를 기리는 차선책이 있다. 바로 차례와 제사가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게 오래된 전통이다. 조상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세우고 차례상을 준비하면 조상의 혼이 찾아와 음식을 흠향(歆饗)한다고 여긴다. 겉치레로 음식을 장만한 게 아니다. 유수한 세월 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풍속이 제사다. 사회가 현대화되며 제사와 차례의 가치보다 편리함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간소화하더라도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들을 기리는 행위를 잊지 않는 게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 성공과 출세, 부자가 되는 것은 필히 누군가의 도움이 함께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제사의 효용성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구태의연한 관습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제삿날이 되면 실제로 죽은 혼이 찾아오기도 한다. 산 사람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다만 모든 조상의 혼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그중에 혼의 힘, 즉 혼신(魂神)이 강하거나 사연이 많은 일부 조상의 혼이 먼저 찾아와 기다린다.

으레 자신의 밥이 차려진 줄 알고 찾아왔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큰 실망을 안고 돌아가는 일이 생긴다. 때로는 꿈에 나타나 배고프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런 꿈을 꿔본 적 없는 사람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조상 꿈을 꿨다고 동네방네 떠들지 않기 때문에 꿈의 사연은 널리 회자하지 않은 채 묻히고 만다.

제사 때마다 소고기, 온갖 과일, 여러 종류의 전과 국을 다 장만할 필요는 없다. 밥과 국 한 가지라도 정성껏 장만해 올리면 조상의 넋이 만족한다. '귀신은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 말은 허언이 아니다. 죽은 자의 혼의 에너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고마움과 은혜를 확실하게 갚는다. 다만 영력(靈力)이 약한 신(神)은 극진한 차례상을 받았어도 힘이 모자라기에 후손을 도와줄 수 없다. 영력이 강한 극히 일부 조상의 혼이 후손을 크게 돕는 것이다.

그렇기에 추석 때마다 간소하게라도 차례를 지내는 게 자신에게도 이롭고, 아들딸에게도 행운과 평안을 준다. 오랜 기간 이어진 전통이나 풍습은 그 존재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작용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용하다고 여기면 안 된다. 신(神)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제사와 차례, 장례문화의 전통을 유지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