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미술로 충만한 가을이네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키아프리즈부터 광주비엔날레까지 가까이 펼쳐진 미술 축제를 즐겨보자
지난 한 주는 바야흐로 ‘예술’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우선 올해 3번째로 동시에 열린 아트 페어 ‘키아프리즈(KIAF+FRIZE)’는 작년의 성과를 훌쩍 뛰어넘어, 서울을 글로벌한 예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키아프(9월 4일-9월 8일)에 8만2000여명, 프리즈(9월 4일-9월 7일)에 7만여명이 방문했고 수십 억대 작품들이 행사 초반에 판매가 될 정도로 컬렉터들의 관심도 높았으니 아트 마켓으로서 증명도 충분히 해 낸 셈이다.
이 두 아트 페어와 함께 서울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도 ‘서울아트위크’란 이름으로 한 해 동안 준비해 온 주요 전시와 관련 행사들이 한껏 펼쳐졌다. 참여하지 못했더라도 예술의 향연이 한 주로 끝나는 건 아니니 아쉬워하지 말자. 광주에서는 3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9월 6일-12월 1일)가 31개의 파빌리온과 함께 성황리에 개막했고, 부산비엔날레(8월 17일-10월 20일)와 경기도자비엔날레(9월6일-10월 20일) 등 전국 곳곳에서 굵직한 아트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등 많은 해외의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한국의 예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하고 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미술축제’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나 역시 기관에서 KF 갤러리와 KF XR 갤러리 등 갤러리 두 곳의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이라 방문할 곳도 만나봐야 할 사람도 많아졌다. 여유를 가지고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관람객의 입장이 아니니 시간을 쪼개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 앞에서는 마음이 크게 움직여 발길을 떼지 못한 채 한참을 서성인다.
지난주 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해로 15회를 맡는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란 주제로 30개국 72명의 현대미술 작가가 참여했다.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판소리를 '마당이자 공간'이라고 설명하며 이곳에서 작품을 통해 변방의 존재들, 타자라 여겨졌던 존재들이 불러내어지고 공명하게 된다고 말한다.
부딪힘소리(1, 2전시실), 겹침소리(3전시실), 처음소리(4, 5전시실) 등 주제별로 구성된 판 안에서 젊은 작가들은 환경, 생태, 여성, 비인간 등 각자의 지향을 가지고 공동체를 향한 조화, 연대, 화합, 공존을 외치는 작품을 선보인다. 판소리라는 주제에 맞게 사운드를 가진 작품들도 눈에 띄는데 이 소리들 역시 공간을 넘나들며 어울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는 본 전시 외에도 국내외 예술 관련 기관과 함께 참여해 개막한 31개의 파빌리온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파빌리온 ‘광주관’(광주시립미술관 2, 3층)은 ‘무등: 고요한 긴장’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었는데, ‘무등(無等, equity)’은 차등의 전제가 사라진 광주의 근간이라는 설명과 함께 한국작가 18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작품을 따라 전시장을 돌다가 이강하 작가의 ‘무등산의 봄’(캔버스에 아크릴 유채, 2007) 앞에 멈추게 되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비경험 세대’를 떠올리며 이 전시를 통해 광주와 무등의 정신을 전하고 싶었다"는 광주관 안미희 예술감독이 전한 이야기가 단번에 와닿는 작품이었다.
남도인의 애환과 삶, 남도의 풍경들을 리얼리즘 화풍으로 보여준 작가의 작품답게 그가 그린 무등산의 모습은 광주의 과거에 대한 공통의 경험 유무와 상관없이 광주가 전하고 싶어 하는 연대에 관람객들을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작가들이 참여하거나 그곳의 문화를 담는 9개의 파빌리온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광주비엔날레재단이 함께한 파빌리온(문화창조원 6관)에는 한국작가 7인(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다문화주의와 이주, 문화적 정체성 등 아시아라는 지정학적 공동체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시선과 경험을 담아낸 작품들이다.
이 공간 안에서도 소리가 흐른다. 이끼바위쿠르르의 ‘해초 이야기’(싱글 채널 비디오/설치, 2023)에 출연한 제주 하도해녀합창단이 부르는 ‘제주 아리랑’이 그것인데, 일을 마치고 혹은 집에서 막 나온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의 제주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노래를 한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부지불식간에 마음에 묻어둔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단한 그녀들의 음성이 ‘다 괜찮다’라는 위로로 느껴지면서 말이다.
심포지엄에서 만난 이끼바위쿠르르팀 김중원 작가는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시아 지역의 섬을 영상으로 담은 ‘열대 이야기’와 그 섬 중 하나인 제주도 해녀들의 생명력 있는 목소리를 담은 ‘해초 이야기’를 서울과 광주에서 동시에 선보일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전하며, 섬에 남겨진 구멍 난 상처들이 해녀들의 목소리들로 채워지고 치유될 수 있음을 느꼈다고 말한다.
가을의 길목에서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공감하고 감동하고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