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깎다 생긴 문화 충돌···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이 두려운 이유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직면한 문화적 도전과 과제 어르신과의 의사소통, 전통 문화와 충돌 큰 난관

2024-09-07     김현우 기자
인천공항에 도착한 외국인들이 버스에 탈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과일 깎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껍질째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양을 예쁘게 하나하나 자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트로트도 문제다. "곤드레 만드레~." 어르신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도 너무 힘들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한국의 한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26세의 필리핀 출신 요양보호사 안나(가명)는 매일 아침 어르신에게 제공할 간식을 준비하는 시간에 큰 고민에 빠진다. 현지에서는 과일을 껍질째 먹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한국의 어르신들은 깔끔하게 깎아 놓은 과일을 선호한다. 안나는 익숙하지 않은 칼질에 서툴러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매주 진행되는 어르신의 심리 안정 프로그램 시간에는 트로트에 맞춰 율동을 따라 해야 한다. 이 또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안나에게는 낯설고 어색하다.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한국의 요양시설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와 도전 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정부는 급속히 증가하는 고령화 사회의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을 추진했다. 다만 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이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권태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한국의 치매 어르신은 대부분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성장한 세대"라며 "이들은 가족 중심의 돌봄 문화와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익숙하며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낮다. 치매를 앓고 있는 경우 일상에서 작은 변화도 큰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으며, 외국인 요양보호사와의 상호작용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오사카부립대 사회복지학과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과 한국 등 유교적 문화가 강한 지역의 치매 노인은 낯선 외국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불안해질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한국의 요양시설은 단순히 신체적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는 어르신들이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문화적 요소들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어르신들은 간식 시간에 예쁘게 깎인 과일을 선호하고 트로트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는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라며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요양보호사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외국인 요양보호사는 한국의 이러한 문화적 기대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일상적인 관습에 적응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어르신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돌봄의 질이 저하될 위험도 있다.

외국인 요양보호사 수급은 국내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인식된다. 요양보호사 인력 부족 문제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건강보험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수요와 공급은 내년까지는 균형을 유지하겠지만, 2026년부터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8년에는 약 11만6000명의 요양보호사가 더 필요할 전망이다. 이는 필요 인력의 15%에 해당하는 수치다. 요양보호사 공급은 거의 변하지 않는데 수요는 매년 4만~5만명씩 늘어나는 탓이다. 지역별로는 전남과 경남에서 인력 수급 부족이 가장 심할 것으로 확인됐다.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한국의 문화에 잘 적응하고 어르신과 원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A 노인전문요양시설 원장은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한국의 전통과 문화적 기대를 이해하고 치매 환자의 특수한 요구에 맞춰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어르신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는 이제 단순히 인력 부족을 채우기 위한 외국인 요양보호사 도입을 넘어, 한국의 문화에 잘 적응하고 어르신들과 조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며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 요양보호사와 어르신들 간의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 있으며, 이는 요양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