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남은 생은 폼생폼사로 산다
[송미옥의 살다보면2] 독거노인 고독사 등 해결 위해 정부 관심과 혜택이 많이 늘어 노인 회관 나와야 받는 혜택들
요즘은 동네 노인 회관에서 점심을 해결할 때가 많다. 이 나이에 벌써 경로당? 하겠지만 집에 있는 날은 회관에 나가 보조교사가 되기도 하고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독거노인의 고독사와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의 관심과 혜택이 많이 주어졌다. 많은 인지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간식, 부식도 제공되고 있다. 회관에 나와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겐 ‘내가 낸데’라는 자존감이 나이에 붙어 교육 참여도 저조하지만 쌀과 반찬이 있어도 상 차릴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나마 우리 마을엔 노인과에 접어든 젊은(?) 봉사자들이 많다.
나는 양쪽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르신들을 보면 애틋하고 정겹다. 그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시작하다가 자주 투덕거리시는데 처음엔 그 이유가 뭔지 몰랐다. 요즘에도 가끔 오르내리는 노인정 사건·사고는 모두 애증의 관계에서 촉발된다.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부대끼다 보니 그들에겐 가족보다 더 한 애증의 강이 흐르고 있다. 객지에서 온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다.
대화를 들어보면 모두 지금의 시간에 살지 않고 옛날 시간에서 헤매신다. 소소한 일로 투덕거리실 땐 웃음이 나고 아이들 같아 귀엽기도 하다. 그나마 금방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날 또 나오셔서 노시니 건망증도 나이 들면 꼭 있어야 하는 필요악이다. 어르신들이 모이면 거의 화투나 윷놀이를 하길래 내가 대화를 하자며 유식한 척 유도했다가 다시 원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화투나 윷놀이는 지금 이 순간을 집중하느라 과거를 묻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혜택이 있어도 집에서 안 나오는 분들은 절대로 안 나오신다.
시골 경로당엔 너무 많은 재산과 명예를 가진 분들이나 너무 많이 배워 고학력자의 경력을 가진 어른들도 이웃과 잘 못 어울린다. 노는 것도 유치하고 수준에도 안 맞고 배울 것도 없고 대화도 안 통한다니 이해가 되기도 하다. 그러니 스스로 뒷방 늙은이가 된다. 집단은 세력으로 형성되니까 어쩔 수 없다. 죽어야 평등하게 해결된다.
가끔 젊은이들이 찾아가 푼수 끼를 발휘하면 못 이긴 척 따라 나오신다. 그것은 ‘오빠’ ‘언니’라고 불러주기다. 좀 유치하면 어떤가. 어차피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기억도 사라지는 판에 오늘 하루 재밌고 즐거우면 되는 거지.
누군가 말하길 수고할 힘이 없는 사람을 꼰대라고 한단다. 호기심도 생각도 수고를 해야 얻어지는데 생각이 고정되고 당연함이 많아지면 꼰대가 되는 거란다. 열심히 고정된 지식을 알려주는 꼰대의 마음을 외면하고 몰라주니 안타까울 뿐이다.
고령과에 들어서 보니 65세 고령인이 어쩌고 하는 뉴스가 나오면 참 민망하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집에 있기보다는 밖으로 나간다. 쉬는 날 하루는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많은 책을 설렁설렁 뒤적거리며 필사도 하고 시간을 보내다 퇴근한다. 누우면 꼼작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움직이면 꼰대 과에서 멀어지게 해준다.
한 달에 한 번은 동호회원들과 강의를 들으러 가는데 흥미 있고 배울 거리가 많다. 이 나이에 무료로 고급 강의를 찾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넘치는 호사다. 강의를 들은 후 TV에서 비슷한 부분이 나오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다. 심오한 수다를 떨 자료가 되어주고, 숙제도 없고, 문 열고 나오면 다 잊어버려도 아무도 뭐라 할 이 없으니 더 좋다. 낯간지러운 비밀을 보태자면 제목이 근사하고 있어 보이는 것을 골라 듣는 이유도 있는데 중년의 폼을 더하고 싶어서다.
서울 친구에게서 전화가 온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해법’이라는 긴 제목의 강의를 듣는데 솔깃하고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안동에도 하게 되면 꼭 들어보란다. 우리가 해법을 제시해서 전쟁을 멈추거나 하는 건 못해도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꼰대에서 벗어나고 고령이 아닌 중년으로 살아가는 거겠지. 또 전화벨이 울린다.
음식이 많이 남아서 저녁도 먹기로 했다며 회관으로 빨리 오란다. 삼시세끼 다 남이 해결해 주니 이럴 땐 고령인이라 불러주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