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성적 대상화 결합 최악 상황"···사회가 방치한 10대 딥페이크

잘못된 성 인식, 약한 처벌의 콜라보 윤리 의식이 기술 발전 못 따라잡아 일상적 디지털 환경 바른 교육 필요

2024-09-04     김민 기자
지난 8월 30일 오전 대전 서구 대전경찰청에서 대전 경찰과 대전시, 대전시교육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모여 딥페이크 성 착취물 관련 범죄 집중단속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만연한 불법 합성물(딥페이크)에 정부가 강경 대응을 선언하는 등 불법 딥페이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10대 사이에서 딥페이크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10대 사이에서 딥페이크가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잘못된 성 인식과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윤리의식, 낮은 처벌의 상호작용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는 허위 영상물 성범죄 가해자의 75.8%가 10대라고 나와 있었다.

10대 사이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이들 세대한테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저연령층에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SNS 등을 이용한 소통 및 관계 형성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함경진 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부장도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재 10대 청소년의 95.7%가 스마트폰을 소유하고 있고 하루 평균 2시간 41분을 디지털 환경에서 보내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딥페이크는 청소년들에게 놀이이자 장난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잘못된 또래 관계 문화도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 함 부장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 단순한 장난으로 끝나지 않고 또래 집단에서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며 "또래 집단 내에서 특정 행동을 비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장난이 아닌 범죄적인 행동까지도 쉽게 용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함 부장은 최근 문제로 떠오른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두고 "디지털 기술과 우리 사회의 성적 대상화, 여성 혐오가 결합한 최악의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변의 지인을 대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실제로 느낄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주변의 사람들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단순히 대상화된 사물처럼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당 센터에서 2021년에 디지털 성범죄 가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 결과 96%의 청소년들이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재미, 호기심, 충동 등의 이유로 디지털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응답했다. 

지난 8월 30일 대구 수성구 시지중학교에서 학교전담경찰관(SPO)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 예방 교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잘못된 성 인식과 미흡한 처벌, 성범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정당화하는 태도가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함 부장은 "한국 사회는 기술 발전이 가져온 놀라움과 신기함에 초점을 맞추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나 사회적 피해에 대한 경각심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익명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감을 덜 느끼게 했고 이에 따라 딥페이크 영상 제작과 유포가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어졌다"고 덧붙였다.

함 부장은 "딥페이크 성 착취물은 앞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와 디지털 기술, 또래문화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끔찍한 사건"이라며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물론 플랫폼 운영 업체가 윤리적 책임을 다하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하며 우리 사회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의 성문화를 변화하기 위한 교육을 비롯한 제도 개선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딥페이크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의 경우 목적에 따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대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딥페이크 범죄가 일어난 원인으로 "N번방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딥페이크가 있었지만 '창작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처벌을 넘어갔다. 아이들에게 경고할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교육 현장에서 코딩은 가르치고 있지만 창작 기술의 결과가 피해자의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딥페이크물에 관해 엄중하게 관리하고 관련 법을 입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 서울경찰청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합성 음란물이 유포되도록 용인한 텔레그램의 역할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의 창업자 파벨 두로프 CEO는 아동 성학대물 유통 방조 등 텔레그램과 관련된 여러 범죄 혐의로 지난주 프랑스에서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