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대통령의 현실 인식
[신율의 정치in] 현실 왜곡 개입 안 돼 기자회견 기대 못 미쳐 국민 불안감 덜어줘야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진부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요새는 당연함이 낯설게 느껴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당연히 안보와 치안 확립을 통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 문제도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일이 떠오른다. 바로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이런 국민들의 생각을 국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황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현실 왜곡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요새 돌아가는 상황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모처럼 국정 브리핑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 브리핑이나 기자회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나름의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연금 문제를 설명하겠다고 하고, 초미의 관심사인 의정 갈등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통령의 브리핑이나 기자회견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금과 관련해서는 이미 언론이 수차례 보도했던 장기적 개혁 방향성만을 언급했고, 의정 갈등과 관련해서는 국민들이 기대했던 해법에 대한 언급은 없고 기존의 정부 입장만을 반복해 설명했다.
의정 갈등과 관련해서 국민들이 특히 실망했던 부분은 아마도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었을 것이다. 가족 중에 암 환자가 있는 국민이나, 희귀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우의 가족들 그리고 급작스러운 사고 때문에 응급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은 의료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실감했을 터인데, 대통령은 이들이 보고 실감했던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말만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의료 현장에 인력 부족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계에 다다랐다는 한 기자의 지적에 대해 "의대 증원을 완강히 거부하는 분들의 주장을 말하는 것 같다"며 "의료 현장을 한번 가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얼마나 많은 국민이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대통령이 일반 병원의 응급실이나 다른 병동을 찾았던 횟수보다는 일반 국민들이 병원을 찾는 횟수가 훨씬 많음은 자명한데, 이런 국민을 상대로 의료 현장을 한번 가보라고 말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해 불가한 언급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의대 증원에 대한 의지는 알겠고, 필자 역시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데는 동의하지만 이런 의료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까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금 세상에서 대통령이 괜찮다고 말하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없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기 이익이 중심이 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인데, 이런 사회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이익과 관련한 현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국민은 대통령과 더욱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지난 3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8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중앙선거여론조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23%를 기록했는데,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부정 평가 이유 2위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서 나타난 보수층은 29%였는데, 대통령 지지율은 23%니, 보수층에서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보수층이나 중도층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그런 상태에서 국민의 불안감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생각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할 시기를 놓치면, 정권은 더욱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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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