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진심··· "아이를 위한 사명감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저출산과 의료 시스템의 한계 속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직면한 도전과 과제

2024-09-01     김현우 기자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26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프리카 소아청소년들. 무심코 떠난 의료 선교 활동에서 결심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기로. 사명감 속에서 시작된 그의 꿈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진환 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에게 물었다. 현재의 기억과 경험을 안고 전공을 선택하던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할 수 있냐고.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아픈 아이를 돌보며 느꼈다.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선택한 계기였다. 현재의 어지러운 현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더 나아지길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란 단어에 벅찬 표정을 짓는 유진환 씨.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이상적인 진료 환경과는 달리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유진환 전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 그리고 낮은 보상이 그가 마주한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그는 현재 정부가 제시한 전공의 처우 개선 방안이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정부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전공의 수당 지급 대상을 확대하고 월 100만 원의 추가 지급을 약속했지만, 이 정책이 과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그는 박리다매 구조의 진료 체계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지적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필수의료에 대한 기피 현상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성경제신문이 유진환 전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를 만났다.

유진환 전 세브란스 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본인제공

ㅡ 전공의로서 근무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로서 가장 큰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인턴이나 전공의로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개인 여가 활동을 거의 포기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교육과 수련,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이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가장 시급한 것은 소아청소년과를 비롯한 필수의료과의 전공의 모집 정상화라고 생각한다."

ㅡ 정부가 제시한 의료개혁안에 전공의 처우 개선 방안이 포함돼 있다.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전공의 수당 지급 대상을 기존 소아청소년과 1개에서 필수과목 8곳으로 늘리고 월 100만 원씩 지급한다고 한다. 이런 방안이 전공의 처우 개선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전공의 수련 기간은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4년이다. 전공의 수련 기간 동안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는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과중된 업무와 인력 부족이다. 한시적인 재정 지원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수의료 전문의로서 제대로 된 처우가 보장되어야만 해당 과로의 지원이 유도될 것이다."

ㅡ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저임금 전공의의 중노동 위에 세운 사상누각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제는 기존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는데 의료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전공의는 수련의로서 해당 수련 기간 동안 전문의로 거듭나기 위한 의학 지식과 술기를 습득해야 한다. 하지만 수련 관련 활동이 보장되지 않고 노동만이 요구되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는 분명한 문제점이 있다. 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은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부로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PA 등을 활용한 전문인력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 등의 방법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 아닌 임시 방편일 뿐이다. 불필요한 진료를 줄이면서도 병원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진료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노동이 줄어든다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ㅡ 전임의가 된 후에 지방에 내려가 의사 생활을 할 의사가 있는지.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 지방에 내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만일 지방에 내려갈 의사가 있으나 제도적인 문제로 인해 선뜻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면, 협력 병원을 비롯해 위중한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인프라의 부재 문제가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ㅡ 정부는 지방 의료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의대 증원이란 카드를 꺼냈다. 이 방안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제도적인 문제보다는 협력 병원과 위중한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인프라의 부재가 가장 크다. 지방의 의료 인프라 및 의사의 생활을 위한 사회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는 한, 의사가 지방에서 일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족할 것이다. 의대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학생이 수도권에 삶의 터전을 잡고 있다. 지방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지방의 낙후된 교육, 문화, 산업, 유통 인프라 등을 먼저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ㅡ 울릉도나 지방 공공병원에 연봉 수억 원 의사 구직 공고가 올라오지만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지.

"아무리 급여가 중요하다고 해도 해당 지역의 구직난에 대해서는 여전히 삶의 터전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그리고 해당 지역의 의료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성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막상 지원을 하면 공고에 기재된 봉급이나 근무조건과 다른 경우가 많다. 공공의료기관으로부터 불과 차로 20~30분 거리에 있으면서도 봉급이 절반도 안 되는 종합병원 등에는 지원자가 몰리는 현실로 보아 급여보다는 주변 여건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ㅡ 최근 의료사고에 대해 법원이 강도 높은 처벌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인지.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요인 중 하나가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지.

"필수의료가 반드시 생명에 직결되는 의료만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생명에 직결되는 상황을 많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맞다. 의사로서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환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올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의료 행위에서도 크고 작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정 환자에게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많은 매체에서 의사들이 단순히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도되는 게 안타깝다. 의료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곧바로 의사의 책임으로 귀결된다는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의학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통해 행해진 진료 행위에 대해서는 불필요한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부가 법적 판단을 내릴 때 해당 진료과를 비롯한 여러 방면의 전문의에게 의학적 판단의 근거를 마련해 충분히 반영하도록 제도를 마련한다면, 환자와 의사의 억울함을 함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ㅡ전공의 사이에서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나타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가장 실력 있는 의사가 필수의료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지. 

"의사란 환자를 치료할 하늘의 선택을 받은 소명을 가진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했다. 주변에서 많은 만류가 있었지만 아이들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고 아직까지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하지만 현재의 박리다매 구조의 진료 체계, 환자를 진료하며 받을 수 있는 법적 제제 등의 사법 리스크 등을 온전히 감당하면서 의사로서의 사명만 강조한다면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의사 수는 계속해서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진료할 수 있도록 법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보험 수가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료체계 개편의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필수의료 기피현상은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ㅡ 전임의 자격증을 딴 많은 의료인이 본인의 전공 분야와 무관한 피부미용이나 성형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는지.

"피부미용과 성형에 종사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해당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왔고, 많은 발전을 이뤄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발전은 단순히 몇 년간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많은 인력이 종사해 현재와 같은 위상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우리가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필수의료 전문의가 해당 분야로 유입되는 이유를 파악하는 것이다. 결국 진료 수가 체계의 문제 해결과 의료사고가 곧 의사의 잘못으로 귀결되는 사회 인식의 개선을 포함한 민형사처벌 리스크 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ㅡ 전공의 입장에서 정부와 의사 간의 갈등이 왜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는지. 이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현재 정부에서 주장하는 정책들은 확실한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고,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것들이다. 의료 개혁을 꿈꾼다면서도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인 정책을 펼친 탓에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진료 체계의 개편이지만 정부는 단순히 의사 수가 부족하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 고집하고 있다. 정부에서 정말로 올바른 방향으로의 의료 개혁을 꿈꾼다면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ㅡ 전공의 복귀를 위해 정부가 선결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정부는 줄곧 의료계와 합의한 바를 일방적으로 어겨 와 신뢰를 잃었다. 현재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한 과학적, 구체적 근거가 전무하기 때문에 전문가로서 납득할 수 없다. 정책을 추진하기에 앞서 신뢰를 회복하고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 의료진을 비롯한 전문가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따라서 지금 정부는 지금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멈추고, 전문가로서의 의료진 입장과 주장을 존중하는 태도로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연구를 선행해야 할 것이다."

ㅡ 결과적으로 올해 의대생이 대부분 유급될 처지이고 내년 전공의 배출도 급감하게 됐다. 2026학년도엔 신입생과 유급된 의대생이 한꺼번에 교육을 받아야 하고 전공의 수련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의대 교육과 전공의 수련이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지.

"급진적으로 시행된 정책으로 인해 앞으로의 상황과 발생할 부작용들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 의료 현장에서 많은 부분이 전공의들에게 편중되었다면 앞으로 겪게 될 문제는 절대 작지 않을 것이다. 의과대학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상황에서 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자원이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후의 과정에 대한 논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정상적으로 수련이 이루어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부가 어떤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