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마디 더봄] 여행

[윤마디의 유니폼]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요?

2024-08-30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안녕하세요. 윤마디입니다.

[유니폼] 도쿄 편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넘어가는 동안 이 이야기가 시작된 여행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스포는 없으니 안심하세요!

2023년 11월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2024년 2월에는 동료 작가님들과 전시도 열었고, 그 과정에서 여성경제신문의 [더봄] 코너도 맡게 되어 이 작업은 감사하게도 현재진행 중입니다.

그럼 저의 그림 여행을 시작합니다.

내가 탄 비행기 좌석 앞. 앞사람 좌석의 뒤죠. /윤마디

11월, 해가 낮게 뜨는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부터 길을 나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전 중에 도쿄에 도착했습니다. 초겨울 새벽공기보다 비행기 안이 어찌나 춥던지 경량 패딩을 입고도 덜덜 떨면서 잠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까지 기차를 타고 바깥 풍경을 구경했습니다. /윤마디

도쿄 나리타 공항은 도쿄에서 60km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1시간 동안 차창 밖으로 파노라마 풍경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넓은 벌판을 복스럽게 메운 배추밭으로 시작해 자그마한 주택이 2층, 3층 연립주택으로 변하고 어느 층에든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는 빛바랜 옷가지들이 나부꼈습니다. 점점 마주 오는 기차가 잦아지고, 플랫폼에는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보였습니다.

후지산 후모톳바라 캠핑장. 멀리 후지산이 우뚝 솟아 있네요.  /윤마디

신주쿠역에서 빌린 렌터카로 곧장 후지산 후모톳바라 캠핑장으로 와서 하룻밤 야영을 했습니다. 공항에서 곧장 신주쿠역으로 가서 금방 차를 타고 떠나면 늦은 점심쯤 도착하겠다 싶었는데, 제가 신주쿠역에서 출구를 못 찾아 헤매고 어리바리한 신입은 렌터카 인도를 어찌나 꼼꼼히 하던지. 도착해 보니 어두워서 후지산은 안 보였습니다.

저는 새벽에 일하느라 5시에 일어나는 덕분에, 태양과 함께 후지산이 떠오르던 광경을 몇 장에 걸쳐 잘 담았지요. 후지산은 오직 하나로만 우뚝 서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든지 후지산을 향하기만 하면 저와 산은 일대일로 마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조용한 분지는 이 산이 저를 팔로 둘러준 것일까요. 텐트 동을 벗어나 우리 사이에 다른 사람 없이, 카메라도 종이도 펜도 없이 산 앞에 나도 다리에 힘을 주고 곧게 섰습니다. 새벽 중에는 분명 은하수도 눈을 감은 깜깜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질척하게 내리깔린 어둠에서 새벽안개를 걷고 떠오른 큰 산이 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내 눈을 쳐다보고 말을 거는 것 같았습니다. 산이 물었고, 저는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산의 품 안에서.
 


도쿄

도쿄. 철도의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도쿄에서 교토로 가는 신칸센 내부에서 /윤마디

도쿄에서 교토로 가는 신칸센입니다. 저와 동갑내기 친구 부부와 시동생, 네 명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2017년에 이집트에 여행 가서 친해진 현지인 동갑내기 친구가 2019년에 친구 부부와 한국에 놀러 오려다가 본인은 못 오고 친구 부부만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제가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을 때라서 서울 구석구석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 주고, 제주까지 같이 다녀온 인연입니다. 둘 다 파워 E(외향형)인 거죠. 그 친구 부부가 시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온다고 해서 저도 마침 휴가를 쓸 수 있어서 가까운 나라로 만나러 간 것입니다.

5년 만에 만난 이집트 친구들이 저에게 삼대 일로 저마다 있었던 얘기를 해주면 저는 부족한 영어로 말하고, 웃겨주려고 아직 기억에 남은 아랍어로 대꾸하고, 처음 와본 도쿄에서 조금 알아듣는 일본어로 안내방송을 따라가고, 조금 읽을 수 있는 한자로 길을 찾고, 메뉴를 고르고···.

5개 국어로 머릿속이 얼마나 바빴는지 두피가 벌렁거렸습니다. 그래서 그림은 친구들이 기차에서 곯아떨어졌을 때, 이렇게 틈날 때마다 그려놓았습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시동생은 스시, 고로케, 당고, 이런 한입 간식을 잔뜩 사서 기차 안에서 아주 즐겁게 먹고는 그림 그리는 제 입에도 떠넣어 주었습니다.

 


교토

교토에서의 그림 작업 /윤마디

교토에서는 색감 팔레트가 달라졌습니다. 버스에도, 건물 사이에 둥근 지붕을 씌워 만든 시장에도, 한 사람씩 앉는 작은 식당에도 나무색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개천가를 걷는 사람들 발걸음에, 음식을 기다리는 얼굴에, 따스한 조명이 그림자와 포개져 있습니다.

길을 향해 활짝 열어놓은 작은 문 안에 작은 사람들이 작은 앞치마와 토시를 두르고 작은 간식거리를 팝니다. 제 옆에 선 이집트 친구들 키가 커서일까요? 우렁찬 “이럇사이마세! (어서 오세요)” 인사가 귀에 간질간질했습니다. 달달한 냄새에 기분 좋아진 친구들이 저랑 사장님을 번갈아 보다가 제가 맛을 번역해 주면 큰 손바닥에 동전을 와르르 쏟아놓고 손톱만 한 동전을 공깃돌처럼 하나하나 집어셌습니다.
 


오사카

오사카 거리와 지하철역 /윤마디

교토에서 며칠을 보내고 시동생이 먼저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났고, 다음날 저는 이틀 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오사카로, 친구 부부는 가나자와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헤어지기 너무 아쉽다며 오사카에서 함께 하루 더 지내자고 하더니 갑자기 좋은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이집트 친구가 잡은 호텔에서 /윤마디

우리는 한 사람을 친구로 둔 덕분에 친구가 된 우연한 인연입니다. 말 그대로 우연일 뿐인데, 2019년에 2주간 진하게 놀고 떠나보낸 후 희한하게도 마음 한켠에 늘 그녀의 안부가 있었습니다. 작은 어항 하나가 마음속 어디 선반 위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가 문득문득 생각났고, 아니 거의 매일 생각했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우리는 공교롭게도 키가 똑같고, 몇 년간 불어나는 몸무게도 똑같은데요. 무엇보다 각자의 문화는 정말 다른데도 유년 시절에 나를 가족과 사회에 맞춰가던 경험이 비슷해서 놀라웠습니다. 한국 여행 후 우리가 서른이 됐을 때, 안 그래도 격변하는 서른을 코로나가 덮쳤다며 서로의 마음 건강을 챙긴 것이 인제 와 보니 코로나 블루를 각자 또 같이 겪어나간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만나보니, 이따금 찾아오는 공허함이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 않지만, 명상과 마음 챙김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태도 또한 비슷했습니다.

이집트 친구와의 대화에는 통역 앱도 필수 /윤마디

또다시 이 부부를 공항 택시에 태워 보냈습니다. 기약 없는 인사말을 아끼며 몇 번이고 끌어안았던 가슴팍이 더욱 헛헛했습니다. 따뜻했던 일본에서도 어느새 11월 중순, 확실한 초겨울이 된 것입니다. 멋쟁이 코트 안에 경량 오리털 조끼를 못 사 입힌 게 계속 마음이 걸렸습니다.
 


오사카 린쿠타운

오사카의 늦게까지 하는 카페에서 /윤마디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혼자 보내는 밤입니다. 공항 근처 작은 마을에 내려 숙소에 짐을 풀고 편의점에서 고로케를 몇 개 사 먹은 다음 서점에 들어가 <21세기 소년> 만화책을 한 봉지 가득 사서 늦게까지 하는 카페를 찾아 들어왔습니다.

미뤄둔 사람들에게 통 크게 한 쪽씩 할애해 주기로 했습니다. /윤마디

미뤄둔 사람들에게 통 크게 한 쪽씩 할애해 주기로 했습니다. 주로 뒷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말 걸기가 조금 편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신의 머리 스타일, 옷, 손짓, 걸음걸이는 무슨 뜻입니까? 어떻게 물어봐야 그림 속 외국인이 대답할 수 있을까?

그녀가 나에게 남겨준 단어들이 생각났습니다.

써본 적 없어서 통역이 필요하던 단어. 하지만 이 세상 누구나 알고 있는 단어.

친구. 고요함. 존재감. 인식. 어린 시절의 열정.


그리고 2024년 2월 올해 초에는 전시도 하였습니다.

책 만드는 과정과 전시는 다음 글에 소개해 드릴게요.

읽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윤마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