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 더봄] 부강한 나라와 쇠락해 가는 나라, 차이는 이것
[강정영의 부국강병] 소명의식 가진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모험적·근면성실로 부강한 국가 된다 국가의 방향성이 미래를 향해야지 과거회귀·소모적 분쟁으로 가선 안 돼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는 그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근세 100년에 가장 뛰어난 몇 명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막스 베버(Max Weber)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라는 명저를 남긴다.
그 핵심 내용은, 유럽 몇 개국을 분석해 보니 가톨릭을 믿는 남유럽 국가보다 종교개혁으로 새로 등장한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신봉하는 네덜란드와 독일이 더 부유한 국가라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돈벌이 자체를 물질적 욕구 충족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모험가적 자본주의 정신과 소명 의식을 중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근면, 검소, 성실하게 일하는 청교도적 관념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칼뱅주의적 소명 의식이라고도 한다.
부의 추구를 삶의 향락적 삶이나 안일하게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부지런한 노동과 금욕적 생활을 신의 섭리로 받아들이면서 근대적 자본 축적이 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도 가장 부유한 나라로 손꼽히는 미국, 호주, 캐나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프로테스탄트 국가다. 이들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혁신적이고 부지런한 국민성에 절제를 중시하는 청교도 정신이 지배하는 나라다.
한국은 개화기에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인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다. 이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맞물려 근면함을 바탕으로 모험적인 도전을 하는 동인이 되었다. 한국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100여 개 개도국 중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유일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급속한 경제성장의 요인 중 하나로 한국 종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의미 있는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반대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사는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종교를 부인하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를 추종하며 독재자가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나라는 더 이상 말할 가치가 없다.
그에 더하여, 국가의 방향성을 과거로 세팅하고 공소(空疎 : 내용이 없고 허술)한 이념 논쟁을 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가난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서 사실상 퇴보했다. 남미에서는 지금도 성행하는 종속이론으로, 아시아 일부에서는 부패와 종교적 분쟁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나라가 많다.
요새 ‘코리아 피크’라는 말이 있다. 그간 국민이 땀 흘려 뛴 결과 지금이 가장 잘사는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회가 갈등하고 분열하면서 기업가들을 홀대하면 슬슬 나락으로 빠진다는 의미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특정 정파가 줄기차게 전면에 들고나오는 ‘친일 논쟁’이다. 100년 전 일제 식민지 강점에 대한 국민 반감을 이용, 걸핏하면 반대파를 조사하여 그 친인척이나 조상 중에 친일 행적을 한 자가 있는지 조사하여 상대를 매장하려 한다.
그 이면에는 순진한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이용, 반대파 인사들을 매도하는 수단으로 친일 프레임을 씌워서 그들이 마치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역적이나 되는 듯이 매장하려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정작 그들의 ‘친중·친북’ 행태는 감추면서.
대한제국 말기에 개화파들은 일본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아시아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배워서,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분들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받아서 망해 가는 조선의 근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그들을 청을 추종하는 친청파들이 말살하려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하며 망해가는 조선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했던 김옥균, 박영식, 서재필, 서광범, 신채호 등 개화파들이다. 쇄국하려는 민씨 일파가 그들을 제거하고 심지어는 3족을 멸해 씨를 말렸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원예학자가 우장춘 박사이다. 그는 동경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했다. 광복 후 한국 정부 초청으로 가족을 일본에 두고 한국에 건너와 볍씨 개량을 포함, 종자 개량에 크게 기여하고 한국에서 숨을 거두셨다.
그의 아버지가 조선 말기 무과에 급제한 우범선이다. 그는 개화파로 일본의 선진화된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훈련대장으로서 민비 시해에 가담하였다가 일본으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부인과 결혼, 우장춘이 태어난다.
그러나 일본에서 몇 년 살지도 못하고 조선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한다. 그의 일본인 아내가 그의 아들을 잘 키워서 유명한 육종학자로 성장시킨다. 그런 가족사를 가진 우장춘에게 재일 한국인들이 아버지 대신 조국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은 ‘친일 흔적 찾기’가 무슨 큰 애국이라도 되는 듯 걸핏하면 ‘친일파 후손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미일 동맹에서 일본을 먼저 떼 3국 동맹을 약화하고, 반대 정파를 친일 프레임으로 무력화시키려는 고도의 정치적인 복선이 깔려 있다.
그들은 은근히 친중·친북하면서 21세기에 대원군 쇄국정책보다 더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서 친일 프레임을 앞세워 순진한 국민들을 선동, 반대파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일제 당시 작가이던 춘원 이광수와 일제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남인수가 친일파로 낙인찍혀 있다. 당시 그들이 자발적인 친일파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가 그들에게 이런저런 협력을 요구했을 때, 당시의 엄혹한 정세에서 ‘난 목숨 걸고 못 한다’고 버틸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저 생존 차원에서 협조했을 것이다. 그것을 마치 엄청난 반민족적인 행위를 한 것처럼 들추어내서 민족의 반역자인 양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운다.
우장춘 박사는 가족과 떨어져 혼자 한국에 살면서 종자 개량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넷째 사위는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인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다. 그는 한국에 잠든 장인의 묘소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과보를 대신하여 인생을 바쳐서 한국 농업 혁명에 크게 기여한 우장춘 박사를 누가 친일파의 아들이라고 비난하겠는가. 비난해서도 안 된다.
쇠락해 가는 나라는 하나같이 불필요한 이념논쟁이나 과거로 역주행하는 방향으로 아젠다를 정하고 싸움박질로 국력을 소모한다. 뻗어나가는 나라는 미래를 보고 도전하고, 발전해 나가는 나라들에 배우고 서로 협력해 나간다.
지금 한국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친일 프레임으로 그들의 숨겨진 의도를 감추고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자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국가에 미래가 없다.
그들이 내세운 친일 프레임에는 이처럼 무서운 복선이 깔려 있음을 알고 엄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국력 낭비를 막고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훼손하면서 쇄국하듯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의 시도를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겨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 한다. 좀 더 합심하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데도 발걸음이 부족한 실정이다. 불순한 의도를 깔고 100년 전 역사를 꺼내서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한국호의 발목을 잡으려는 시도는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