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ATM 신세된 韓 정부···네탓 공방 속 1500억 챙겨갔다
본지 ISDS 중재사건 내부 보고 분석 결과 주식매수청구로 527억 이득 보고 엑시트 재계·학계선 금융당국 '결자해지' 목소리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후의 주식 거래와 2018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정부와의 소송에서 1500억원 가까이 챙겨간 것으로 파악됐다.
19일 여성경제신문이 입수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이하 ISDS) 중재사건(PCA 2018-51호) 경과 보고에 따르면 엘리엇은 2015년 초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집중 매수해 지분을 7.12%까지 늘려 엑시트하기까지 167억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엘리엇은 먼저 1월 29일부터 합병 발표일인 5월 25일까지 삼성물산 주식 773만주를 매수한 데 이어 이후에도 같은 해 6월 4일까지 추가로 339만주(합병후 신설삼성물산 118만주)를 사들여 7.12%의 지분을 확보했다.
합병 발표 전 삼성물산 지분 4.8%를 보유하고 있던 엘리엇은 제일모직 주가는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졌다는 주장을 펼치며 합병 반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2015년 8월 4일 평균 주가 6만754원에 사들인 773만주(3.1%)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당 6만7572의 가격으로 행사한 엘리엇이 결과적으로 527억(5225억 - 4698억)의 이득을 본 뒤 엑시트를 단행한 것.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총회에서의 특별결의사항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갖는 주주가 회사에 대해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정당한 가격으로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를 말한다. 이 제도는 기업 인수합병(M&A)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금전상 불이익이 없도록 회사가 공정한 가격으로 보유 주식을 매수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이 알려진 시점을 전후해 양사의 주가가 상승하면 주주들은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거나 소량만 매수 청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반대로 합병 전망이 밝지 않아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을 밑돌 경우 대량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적 또는 물적 기업 분할 당시 주주들에게 단순 탈퇴권을 보장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 보호 효과보다 기업 구조조정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 국내에선 합병비율을 반대하는 반대주주의 주식 매수청구로 M&A가 무산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지난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현 삼성E&A)의 합병 추진 당시 삼성엔지니어링 주주의 주식 매수청구 규모가 당초 제시한 한도(4100억원)를 넘는 7063억원으로 집계되며 합병이 무산된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올해 하반기 매머드급 빅딜로 꼽히는 두산3사(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SK이노베이션과 SK E&S, 셀트리온그룹 합병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용 재판서 허구로 밝혀진 삼바 분식
법원도 증거불충분 지적 제재 취소 명령
증선위 항소시 엘리엇에 명분까지 내줘
삼성물산 주가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안 발표 후 우상향하며 주주총회 전날인 7월 16일 주당 6만9300원까지 오르더니 합병 이후 곤두박질쳤다. 엘리엇이 주당 6만3559원에 사들인 삼성물산 주식 118만주(舊 삼성물산 주식 339만주)를 1798억원으로 털어낸 시점은 9월 25일로 360억(2158억-1798억)원이다. 다시 말해 엑시트 비용을 치르고도 167억원의 이득을 본 셈이다.
삼성물산을 떠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 판정을 신청한 것은 이로부터 3년 뒤인 2018년이다. 삼성물산의 옛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낸 합병무효소(2016가합510827)가 기각되며 합병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관련 국정농단 재판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유죄를 선고받은 것을 엘리엇은 '국가 행위'로 판단했다. 동시에 제일모직 주가가 실제 가치보다 부풀려졌다는 주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논란으로 확전됐다.
이재용 회장이 올해 2월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관련 재판에서 무죄를 받으며 검찰측 주장이 명분을 잃고 지난 8월 24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제재 취소 판정이 나오면서 분식(시너지 효과 조작) 오명을 벗었지만 국제 재판에서 패소한 책임을 둘러싼 여진은 여전하다.
지난해 6월 20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ISDS 본안 소송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패소한 데 이어 한동훈 당시 법무장관이 제기한 취소 소송(본안 전 항변의 건)도 패소하면서 정부는 5358만 달러(약 690억원)에 더해 지연이자와 분쟁비용 등 약 1300억원을 국고를 들여 지급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본지 취재 결과 법무부가 지금까지 삼성이 승소한 합병 무효의 소 판결을 엘리엇 대항 논리로 활용하고도 패소한 것으로 확인(※ 관련 기사 [분석] 박근혜 사면, 양승태 무죄···이재용 1심 재판 핵심 쟁점은)된다. 재계 안팎에선 정부가 늦었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상고 및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삼성바이로로직스 분식 회계 논란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감리와 재(再)감리 끝에 '고의적 분식회계' 판정을 받았지만 6년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증선위에 제재 취소 명령이 내려진 케이스다. 당시 삼성바이오젠에 대한 콜옵션 부채손실 1.82조원이 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연도 당기순이익에 이미 반영돼 분식을 할 '유인'도 없었다.
다시 말해 삼성물산-제일보직 합병 당시 '비상장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얼마나 분식해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올라갈지 미리 계산해 이재용 회장의 승계 전략을 짠다는 것은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란 지적이지만 금융당국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염두에 두고 사전적으로 짜맞추기한 것이라는 참여연대 주장을 근거로 항소를 검토 중이다.
2020년 9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으로 이재용 회장에 대한 기소를 강행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자본잠식 회피 수단에 불과한 회계처리"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논평을 통해 "주주는 주식을 팔고 나갈 수 있지만 경영진은 손실을 하소연할 데도 없다"며 "증선위가 이번 1심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무조건적인 항소를 자제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