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바이오 행정소송도 '勝'···6년 만에 사실상 '무죄'
法 "'증거 불충분 증선위 제재 취소하라" 금감원은 사실상 불복···기존 입장 유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원 규모 회계 장부가 분식(粉飾·꾸미기)이었다고 지난 2018년 금융당국이 결정한 제재를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 임원들의 분식회계·허위 공시 의혹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한 판결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제2기부터 제4기까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단독지배했다고 봐 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 것은, 회사의 재량권의 범위 내에 있고, 피고 증권선물위원회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회계처리기준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금융당국의 처분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 제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등 취소청구소송(2018구합86719)에서 이 같은 결정을 6년 만에 내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지분가치를 2900억원에서 4조8000억원으로 올려잡았다. 이와 관련 지난 2월 이재용 회장의 분식회계 1심 형사 재판에선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사업 성공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미국 제약회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살 권리)이 실질적 권리가 돼 지배력 변경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논란의 시작점은 1996년 이건희 전 회장 체제에서의 삼성에버랜드 신주 발행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에 대해 2009년 대법원은 주주와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무죄로 결론내린 바 있다. 이어 2017년 2월 16일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위해 결성된 박영수 특별검사 소속 한동훈 검사(현 국민의힘 당대표)가 이재용 회장에 대한 2차 구속영장에 '지배권 강화를 위해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준 것'이란 내용을 담으면서 경영권 승계 프레임을 걸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 간에 묵시적 청탁이 이뤄졌다는 주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열흘 앞둔 2018년 5월 1일 금융감독원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고의적 분식에 대한 조치안을 통보하면서 구체화했다. 당시 금감원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삼성 내부 문건을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출했고 증선위원 5명은 '고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 수사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이던 김경율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2018년 7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박영수 특검의 공소를 충실하게 반영한 국정농단 1심과 항소심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졌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도 있었지만, 2020년 9월 이재용 회장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이재용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조정하려고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벌였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었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를 거쳐 9월 1일 이뤄졌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6년 11일 상장됐다.
다시 말해 합병 당시 '비상장 기업'이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얼마나 분식해야 제일모직의 주가가 올라갈지 미리 계산해 승계 전략을 짠다는 것은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란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을 염두에 두고 결론을 정해놓고 회계처리를 변경 한 뒤 나중에 짜맞추기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에서 패소한 금융감독원도 "판결 주문상 (증선위) 전부 패소이긴 하나 처분의 절차적 하자가 없다고 본 점, 형사재판 1심과 달리 2015년 지배력 변경은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아니라고 한 점은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2020년 9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으로 기소를 강행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자본잠식 회피 수단에 불과한 회계처리"라는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