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의 불바다 리스크···주민 안전 장치 없이 충전소 늘려온 정부 딜레마
주유소도 이격 거리 두는데 충전소 특혜 보조금 줬다 뺏으려니 업계 카르텔 반발 정부 관계부처 논의후 내달초 대책 발표
아파트 단지 내 전기차 화재의 공포를 키운 것은 안전에 대한 고려 없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지원하며 충전소를 늘려온 정부 책임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는 올해부터 전기차 공용 충전시설 설치 보조사업 예산을 전년 대비 42% 증가한 3715억원으로 늘리고 지난 3월부터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또 여기에 맞물려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100세대 이상 신축아파트는 주차 면적의 5% 이상을, 기축아파트는 2% 이상을 전기차 충전시설과 전용 주차구역으로 확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아파트 내 전기차 충전시설은 공용 완속충전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직접신청 보조사업으로 1340억원이 배정돼 있다. 공용 완속충전기 1기당 지원 보조금은 충전기 용량(kW) 및 설치 수량에 따라 최소 35만원부터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한다.
전기차 충전소 지원에 지상·지하 구분은 안 돼 있지만 최근 신축 아파트는 대부분 지상 주차 공간이 없다. 지하라는 특수 공간에서 화재가 한번 발생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전기차의 특수성 감안 없이 무차별적인 보조금을 퍼부은 결과 아니겠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군다나 본지 취재 결과 직접신청 보조사업 예산 1340억원 가운데 800억원을 차지하는 화재예방형 공용 완속충전기는 기술적 문제로 올해 하반기부터 지원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 및 폭발 위험이 큰 주유소를 거주지에 설치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인 전기차 보급 확대에 맞춘 탁상 행정이란 것.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보조 사업은 환경부가 한국자동차환경협회와 한국환경공단에 위탁해 운영해 오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건축물대장과 건물소유자 또는 입주자대표가 아닌 경우에는 입주자 80% 이상의 동의서 또는 회의록을 첨부한 서류를 환경공단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보조금 집행이 이뤄진다.
주택단지 내 화재가 문제가 되자 정부는 관계부처 차관 회의를 잇따라 열어 다음달 초 대책을 발표할 방침이다. 환경부는 배터리 안전성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현대차를 시작으로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2018년부터 배터리 제조사 공개를 시행 중이고,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에서 2026년, 유럽연합은 2027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정부는 화재의 주요 원인인 과충전을 예방하기 위해 충전율과 충전시간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다음달 말까지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을 개정해 충전율 90% 이하 전기차만 아파트 지하 주차장 출입을 허용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말 기준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34만7000대로 화재 발생(44건) 비율은 0.013%였다. 이에 비해 내연기관차의 화재 발생 비율은 0.016%로 전기차보다 낮았다. 하지만 전기차는 한 번 불이 나면 인명 및 재산상의 피해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든 삼원계 배터리든 열폭주 발생시 전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리튬의 특성 때문이다. 배터리 온도가 불과 몇 초 만에 400℃, 몇 분 만에 1000℃ 이상 폭증하고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배터리 내부 분리막 품질에 문제가 있으면 (과충전으로 인해) 찢어질 위험은 더욱 커진다. 다시 말해 과충전이 화재 위험성을 높인다는 얘기다. 대규모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화재가 일어난 후에 필요한 진화 물질을 내부에 구비하는 것보다 열폭주를 사전에 감지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붓고도 주택단지 화재 위험만 키운 정부가 막상 지원 정책을 되돌리자니 업계 내에선 카르텔의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애널리스트는 과충전 방지대책을 발표한 오세훈 시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중국산 배터리의 안정성 부족 문제를 K 배터리를 포함하여 전기차 전체의 문제로 삼는 것은 친중매국노 짓"이라고 주장했다.
주택단지와의 이격 거리를 두는 주유소나 수소충전소와의 차별적인 행정이 주민들의 위험을 더욱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건설기준규정 제9조의2 제1항은 위험물 저장 및 처리시설 중 주유소 또는 자동차용 천연가스 충전소의 경우에는 25m 이상 떨어진 곳에 공동주택 등을 배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기도 신도시 한 아파트 거주자는 "보조금을 지급해 주유소를 지하에 설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탁상행정에 결국 역차별적 피해를 보게 된 것은 내연기관차 소유 주민들"이라며 "전기차 충전소 설치 사업에 전면적인 안전점검이 필요해 보인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