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거품 붕괴 전조 vs 겹악재 재채기···코스피, 공포 위 오락가락

5일 폭락 후 6~8일 오락가락 장세 불황·앤 캐리 청산·AI 거품론 악재 "침체 시작에 불과" 증권 비관론도 전문가 "시장보다 실적 봐야 할 때"

2024-08-08     허아은 기자
지난 5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증시가 폭락한 양대 원인으로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서 비롯된 '패닉 셀'이 지목됐다. /연합뉴스

'본격적인 거품 붕괴의 시작일까, 겹악재로 인한 일시적 조정일까.'

지난 5일 이른바 '블랙 먼데이' 이후 시장은 혼돈 상황이다. 6~7일 주식시장이 반등하나 싶었으나 8일 다시 조정을 받으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등락을 반복했다. 개장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떨어졌던 지수는 오전 9시 49분 전일 종가(2568.41) 대비 1.9%가량 떨어지며 장중 최저가를 기록했다. 이후 반등하기 시작한 지수는 오후 12시 50분 당일 최고가(2570.34)를 찍은 후 하락하다가 2556.73으로 전날보다 0.45%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특히 전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대표적인 반도체주인 슈퍼마이크로컴퓨터가 '어닝 쇼크' 실적을 발표한 뒤 엔비디아·AMD·브로드컴 등 기술주가 급락한 게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했다. 그나마 실적이 호전되던 반도체·기술주조차 실적 쇼크를 내자 미국 경기가 침체할 거란 우려가 되살아났다.

상반기 기술주 랠리를 이끈 인공지능(AI) 관려주의 고평가론이 나온 와중에 대형 기술주 그룹 '매그니피센트7'에 소속된 기업의 분기 실적이 기대를 뛰어넘지 못하자 실망 매물이 쏟아진 터였다. 지난달 헤지펀드사 엘리엇, 골드만삭스 등은 'AI가 생각보다 돈을 벌기 어렵고 투자가 과열됐다'고 평가했다. 아마존은 기대 매출을 하회하는 실적을 내놨고 마이크로소프트맞 순항하던 클라우드에서 시장 전망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냈다.

여기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도 가시지 않았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란 엔화가 장기간 약세를 보이자 싼 엔화를 빌려서 미국 등 해외시장에 투자됐던 자금이 미국의 금리 인하와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미·일 금리차가 좁혀지자 환차손을 우려해 일본으로 역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 등 해외시장에 투자했던 주식·채권을 한꺼번에 내다 팔아 시장을 교란하게 된다.

지난달 31일 일본은 정책금리를 기존 0~0.01%에서 0.25%포인트 인상했다. 여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9월 금리 인하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엔화 투자자들의 불안심리에 불이 붙었다.

증권가에서는 이와 같은 요인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며 미국발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비관론'이 나오기도 한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주식전략파트장은 여성경제신문에 "미국 고용시장은 그 모멘텀이 둔화하기 시작하면 이후 추세적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나타난 미국 시장의 하락은 이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미국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가면 한국 역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실업률 상승 폭 작고 다른 지표 나쁘지 않아
엔 캐리 청산 미-일 금리차 3%p보다 커져야
"美, 기준금리 급속하게 떨어뜨리지 않을 것"

그러나 미국 실업률 소폭 상승만을 가지고 미국의 경기 침체를 예단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과거의 실업률과 비교할 때는 아직 양호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평균치가 지난 1년 내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는 이론 '샴의 법칙(Sham's rule)'을 근거로 4.3%의 실업률이 경기 침체의 전조라고 주장한다. 김 명예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샴의 법칙은 판단 지표일뿐 이론으로 정립된 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과 관련해서도 한국에는 그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이뤄지면서 코스피가 큰 폭으로 떨어졌던 적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코스피는 최고 56.7% 떨어졌으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19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 시기에도 각각 35.7%, 38.9%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현재는 이전처럼 큰 폭으로 코스피가 떨어지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김 교수는 "대개 미·일 간의 금리 차이가 3%포인트 밑으로 줄어들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된다"며 "미국이 금리를 내년 상반기까지 3%대로 떨어뜨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5.50%로 일본과는 5.0%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리고 있다.

통상 미-일 금리 차가 3%포인트 이상 벌어져야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된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미국과 일본 간 금리 격차는 5%포인트를 넘는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가파른 엔화 강세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공포가 과장됐다는 데에 힘을 싣는다. 김 명예교수는 "일본은 환율을 높였을 때 재미(이득)를 봤기 때문에 방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 확실시 되는 미국 기준금리 인하도 국내 증시에 악재와 호재 어느 쪽으로 작용할지 미지수다. 그동안 긴축을 이끌어온 미국이 금리 인하로 경기 부양에 나서는 건 시장에 호재다. 돈이 그만큼 많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달러가 급하게 약세로 돌아서면 한국에 투자됐던 미국 투자금이 환차손을 우려해 대거 빠져나갈 수 있어 시장에 충격을 줄 우려도 있다. 

다만 미국이 점진적으로 금리를 낮춘다면 한국 수출엔 도움이 될 거란 전망도 있다. 미국 연준이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미국 소비가 살아나면 한국 수출도 좋아질 거란 얘기다. 박도준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국내 증시 변동성은 나타날 수 있겠지만 미국 내수가 살아나 국내 기업 수출이 늘어나니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에 대한 투자를 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조만간 발표될 미국 경제 지표에 따라 상황은 조금 유동적으로 될 것"이라면서도 "불안 심리가 너무 커진 상황이라 8월 한 달 내내 변동성 장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시장은 작은 악재나 호재에도 출렁거릴 수 있으니 이럴 때는 시장지표를 보기보다 기업의 실적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