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건설노동자 목숨 건 사투···휴식 권리 보장 법제화 시급
온열질환으로 사망자 속출 현장은 휴식 보장 안 지켜 "작업량 맞추기 위해 감내"
최근 폭염에 의해 공사 현장에서 60대 인부가 작업 중 열사병 증상으로 쓰러져 숨지는 등 혹서기 노동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폭염엔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국회와 노동법 관계자의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더불어민주당 김주영·이용우 의원 등은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폭염기 건설노동자 사망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토론회’를 개최했다.
여름철 섭씨 35도가 보통이 되면서 폭염은 일터에서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올해 전국 폭염 일수는 14.1일로 평년(1991∼2020년)의 10.5일을 훌쩍 넘어섰다.
최근 5년간 23명이 일터에서 열사병, 탈진, 열경련 등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산재로 승인받지 못했거나 신청조차 안 한 '비공식' 사례까지 더하면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566조(휴식 등)는 근로자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히 휴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건설노동자 문여송 씨는 "휴게 공간 및 폭염에 대비하는 시설이 부족하다"며 "제가 근무하고 있는 마곡지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도 하루 평균 작업 인원이 200명 이상인데 그늘 천막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마저 작업구간과 거리가 멀어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아침 합동 조회 시간 때 안전담당자는 폭염에 대비하여 충분한 휴식 및 수분 섭취를 지시하며, 폭염주의보 및 경보 시 강제 휴식을 진행하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현장에서의 강제 휴식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은 하루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 속옷만 입고 작업하기도 한다"며 △폭염 작업 기준 마련 △온열질환 예방 교육 의무화 △냉방 시설 설치 의무화 △폭염 기간 현장 감독 강화 △노동자 참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문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연구원은 폭염 관련 규범 자체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안전보건규칙(고용노동부령)상 고열 작업은 용광로 같은 열원에 근거해 폭염을 아우르지 못하고, 폭염시 ‘적절한 조치’를 하도록 하면서도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지만, 그 근거인 ‘급박한 위험’에 폭염이 포함되는지가 모호하다"며 "폭염기 건강 장해 예방을 위해 고온 노출을 줄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고, 이는 휴게시간의 부여와 적절한 휴게시설의 설치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27일부터 이틀간 1575명의 건설노동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 결과 15%가 무더위에 물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206명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는 20.3%에 달했다.
21대 국회에서 정당을 불문하고 폭염기 노동자들의 건강 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임기가 마무리되면서 폐기됐다.
22대 국회 들어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보건조치’(제39조) 조항에 ‘폭염·한파에 장시간 노출되어 작업함에 따라 발생하는 건강 장해’를 추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폭염이나 한파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는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사업주의 보건 조치 의무에 법률로 규정하겠다는 것이다.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근로자의 작업 중지’(제52조) 조항에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외에 폭염, 한파, 태풍 등 기상이 근로자의 안전과 생명에 위협이 될 경우에도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게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두 법안은 모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