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사무실에서도 가끔 멍때려 보세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릿속 비우기 멍때리기는 가장 쉬운 생활 속 명상
“식사 안 하세요?” 옆 부서 동료가 점심시간에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는 나에게 찾아와 물었다. “네,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먹으려구요. 조용한 사무실이 너무 좋네요.” 동료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전 글에서 점심시간에 방문하기 좋은 나만의 아지트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무실과 조금 떨어진, 아는 얼굴이 아무도 없는 그곳에 앉아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가끔 갖고 있는데 그 시간이 주는 활력으로 이후 회사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여유로워진다고 말이다. 그곳에서는 굳이 책을 읽거나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아보지 않는다. 대신 신경 써 왔던 일들과 거리를 두며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다. 소위 ‘멍때리기’ 말이다.
예전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멍때린다’라는 말이 ‘정신 차려’라는 핀잔과 함께 이야기되곤 했는데, 요즘은 일종의 ‘힐링 타임’처럼 사용된다. ‘멍’한 상태로 일정 시간을 보내는 게 필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말이다. 각종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며 멀티태스킹이 익숙해진 이 분주한 시대에 머릿속을 비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일부러라도 이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뇌의 휴식을 주는 건 단순히 쉬는 것 외에도 특별한 기능이 있다.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Marcus Raichle) 박사는 사람이 특별한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뇌의 안쪽에 위치한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그리고 두정엽이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이 세 부위를 연결한 신경망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명명하며 평소에는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뇌의 각 부분이 이때만큼은 활성화되어 창의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DMN 신경세포망은 멍때릴 때나 잠을 자는 동안, 그러니까 목적 없이 뇌가 사용될 때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종의 뇌의 충전 시간이라는 것이다.
신입 기자 시절 부서의 최고참 선배 기자가 생각난다. 그 선배는 매번 점심을 마치고 들어와서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곤 했는데, “선배는 무슨 생각을 매일 그렇게 하세요?”라고 묻는 나에게 “그렇게 보이나? 오히려 생각을 안 하고 있는건데. 이렇게 하루에 한 번씩 멍하게 머리를 비워야 오후에 일할 기운이 나거든”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 역시 선배를 따라 사무실에서 눈치 보지 않고 멍때리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날은 ‘멍때리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대신 신입사원이었을 때를 떠올리며 사무실에 남아보기로 했다. 마침 부서의 모든 직원이 일찍부터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간 터라 빈 사무실에 나 혼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근무를 한다면(했다면) 알겠지만 직원들로 북적이며 온갖 회의와 서류가 넘나들던 공간이 비워졌을 때, 그 조용한 사무실이 주는 안락함은 특별하다. 마치 바쁜 일상에 뜨겁게 달궈지던 뇌가 잠시 기능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처럼 말이다. 이럴 때 머릿속에서는 서로 다른 쪽에 위치한 뇌들이 반짝이며 연결되고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고 했다.
빈 사무실 안에서 모니터의 커서가 반짝여도 반응하지 않고 강박 없이 앉아 있다 보면, 빠르게 뛰던 심장이 평온해지며 이 공간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가치와 만족이 무엇인지 조금 더 명징하게 알게 된다.
지금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어디서든 스위치를 끄고 잠시의 적막을 마주해 보길. 숨을 고르며 머리를 비우면, 내 앞에 놓여있는 복잡한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그것들의 관계가 드러나고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완벽하게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