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녕 더봄] 소통 지향적 리더가 만든 ‘사내 익명 게시판’, 왜 독이 됐을까?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 건강한 조직 문화를 위한 제도에는 명확한 목표·구체적 운영안이 필수
C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 3년간 직원 수는 2배가 됐고, 이제 80여명이 일하는 기업으로 발전했다. 직원 수가 30명일 때까지만 해도 C사 대표는 직원과 직접 소통하는 일에 진심이었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과 소통하는 일이 무척 어려워졌다.
한편, 소통 지향적 리더인 C대표는 조직 성장을 위해 점점 외부 영입 인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표는 사내 ‘익명 게시판’을 만들어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고, 매월 전 직원과의 타운홀 미팅을 통해 게시판 글에 대표가 직접 답변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공표했다.
첫 6개월 동안은 사내 게시판에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가 올라왔고 타운홀 미팅도 건설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게시판에 다른 직원에 대한 비난, 팀과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글이 몇 건 올라오면서 게시판과 타운홀 미팅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게다가 갓 입사한 신입 직원들의 질문은 2~3달 전에 입사한 직원들의 질문과 비슷해서, 답변하는 대표와 기존 직원들은 반복적인 내용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얼마 후 대표와 회사에 대한 비난, 질문을 가장한 반복적인 항의 글,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는 인신 공격성 투서 글 등이 게시판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부정적 글에 대해서는 대표가 답변하지 않자, ‘대표님이 게시판 글을 다 읽는다고 알고 있는데 왜 이런 내용은 무시하고 답변하지 않냐’, ‘왜 회사 차원에서 인사 조치를 하지 않냐’는 등의 비슷한 글을 누군가가 계속 올렸다. 대표는 큰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게시판과 타운홀 미팅을 바로 폐지해 버렸다. 직원들과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가, 사전 소통 없이 소통 창구를 없애 버린 것이다.
물론 사내 게시판으로 표출되었던 일부 직원들의 불만과 비난, 부정적인 말들은 게시판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뒷담화, 친한 동료와의 메신저로 옮겨갔다. 한편 게시판을 통해 직급·경력과 무관하게 종종 올라왔던 다양하고 좋은 아이디어들은 표출될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다.
직원과 소통할 기회를 늘리고 싶다는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사내 게시판과 타운홀 미팅을 통한 대표와의 대화 시간’은 오히려 C사 조직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왜 그랬을까?
먼저 이 제도의 효율성이나 효과를 따져보자. 직원이 새로 들어올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 감정과 비난이 담긴 게시판 글이 회사 분위기와 팀워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하면 사내 게시판 제도는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조직 문화에 도움되는 효과적인 제도라 하기 어렵다.
여과없이 게시판에 올라온 악의적 비방 글은 대표의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직원과 소통의 기회, 직급과 경력에 제한을 두지 않은 다양한 아이디어 수용을 위한 제도가 회사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대표 입장에서는 일부 게시글로 인해 이 제도가 회사가 성장하고 팀워크를 발휘하는 데에 발목을 잡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급기야 대표가 전 직원들과 약속한 제도를 직원과 소통 없이 바로 폐지하는 결과까지 낳고 말았다.
소통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 마련한 ‘사내 게시판’ 제도, 어떻게 운영했어야 조직에 독이 아닌 약이 됐을까?
모든 제도에는 명확한 목표와 목표 달성을 위한 운영 방안과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회사와 직원 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게시판이라고 했는데, 직원과 어떤 주제의 소통을 하고 싶은 지, 무엇을 어떻게 개선하고 싶은 지와 같은 목표의 명확성을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사내 게시판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 운영안을 설정하고, 시행 전에 직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마치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전에 사용 가이드를 먼저 읽어 보듯이, 직원들이 합의한 ‘게시판 사용 가이드’를 사전에 배포하는 것이다. 제도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건강하게 운영하기 위한 규칙을 만드는 것과 이 규칙을 조직 구성원과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내 게시판을 현명하게 운영하기 위한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 가령 주제 별 열람 가능한 대상을 선정하거나 비방·욕설 또는 특정 직원을 향한 인신공격성 발언은 즉시 삭제된다는 것을 ‘게시판 사용 가이드’에 추가하는 것이다.
모호하거나 너무 광범위한 질의가 많아진다면, 지금 우리 조직에 필요한 사항에 초점을 맞추게 하거나 팀과 조직의 성장에 득이 될 내용 위주의 질의를 적도록 함으로써, 건강한 게시판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FAQ 섹션을 마련해 전 직원으로 하여금 게시글 작성 전 자주 받는 질문과 대표의 답변을 참고하도록 해서 게시판 분위기와 대표의 답변이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할 경우, 리더가 일방적으로 시행하는 것 보다는 먼저 변경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직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의 변경이나 중단에 대해 리더의 사전 소통과 고지 후 시행할 경우 제도의 효율성과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가 실행 단계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제도로 연결되지 못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원활한 소통, 건강한 팀워크, 생산적인 업무 분위기 형성 등 건강한 조직 문화를 목표로 하는 탄탄한 제도의 마련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다.
제도가 자리잡기 전에 중단되는 경우도 많고, 시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며, 리더의 사고나 감정 변화에 따라 구성원의 공감대나 합의를 이끌어내기 전에 제도의 방향성과 시행 방법이 크게 바뀌어 효과를 못 보는 경우도 많다.
건강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제도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리더로서 명확한 목표, 제도의 효과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구체적인 운영안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회사 성장을 견인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때론 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리더의 뚝심과 굳건한 의지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