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아침이슬' 김민기 장례 유감···예술인 묘역 하나 없는 'K-컬처의 나라'
문화예술 창달 지대한 공헌 한 예인 죽어서도 대접 못 받는 현실 통탄해 빈 외곽 예술인 묘역 벤치마킹 하자
내 젊은 시절을 숱하게 울게 했던 김민기가 저 거친 광야로 아침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민주화 세대를 대표하는 김민기는 천안에 있는 한 공원묘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음지에서, 비록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민주화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 몇 명이나 있을까 생각하면 그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다. 더욱이 그의 그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대접받았던 수준과 사후에도 장례가 개인적 영역으로 치러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분노까지 치민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민주열사, 우국지사라 칭송하며 그 후손들까지 예우한다. 김민기는 어떤가. 상가를 찾은 유인촌 장관이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그러나 개인의 영달을 버린 채 이 땅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원인이 돼 문을 닫아야 했던 '학전'을 어떻게 해서라도 살리겠다고 했단다.
만시지탄이다. 죽어야 재평가받는 현실, 사라져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는 우매를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김민기를 비롯한 우리나라 문화예술 창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예인들이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현상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그들이 초라하게 개인 묘지나 공원묘지에 안치되는 우리네 실정을 보면 문득 오스트리아가 떠 오른다.
오래전 대기업 간부 부부들을 인솔해 동유럽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빈에서의 이틀 체류 시 다음 날 행사는 모차르트가 산책하며 악상을 떠올렸다는 숲길 체험이었다. 그런데 전날 난데없는 폭우로 다음날 걷기가 힘들어졌다고 판단해 진행요원들과 늦은 밤 대책 회의를 가졌다.
다음 날은 맑다는 일기예보를 들어 강행해도 된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동유럽 여행객의 복장과 진흙 길인 숲속을 감안한다면 돌아오는 크레임은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마땅한 대안 찾기가 힘들어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 현지 가이드가 빈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는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운을 뗐다. 우리네 묘지를 생각하면 펄쩍 뛸 제안이지만 단번에 승낙했다. 다음날 빈 시민 묘지를 다녀온 후의 반응? 말을 해 무엇하나.
빈 외곽에 있는 시민 묘지공원은 테마별로 권역이 나뉘어져 있다. 그중 예술인 묘역에는 슈베르트, 모차르트, 베토벤을 비롯한 수많은 오스트리아를 빛낸 예술인들이 묻혀 있다(일부는 가묘이지만).
고급 정원을 방불케 하는 영내에 각 예술인의 특성을 살린 동상과 건축물로 꾸며진 묘역을 둘러보는 시간은 한마디로 예술의 세계를 거니는 시간이자 한 세대를 풍미했던 예인들과의 대화의 시간이다. 빈 시민 묘지공원은 단순한 공동묘지가 아니다. 그 자체가 예술 무대이자 후손들에게 선조들을 기리는 교육의 장이고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정신문화에 크게 기여한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 그들이 떠난 후의 예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올림픽이나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체육인에게는 군 면제 혜택을 주면서 전 세계를 열광케 하고 K팝을 진작시킨 BTS는 병역 혜택에서 제외된 사례를 부각하고자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김민기처럼 국민의 정신세계를 인도했으며 우리네 예술세계를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예술인들은 왜 개인 차원으로 끝나게 만드는가. 우리도 비록 사후이긴 해도 그들을 국가적으로 예우하고 그 장소를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그리고 나아가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관광 자원화할 방법은 없을까?
김민기 같은 국가적 보배들을 사후에라도 길이 기릴, 예술인 묘역 같은 곳에 모실 방법은 없을까? 우리도 빈 시민 묘지 예술인 묘역 같은 곳을 만들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