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에도 '수익률 저조' 비판···'저위험 선택 제한'이 답?

기재부·노동부·금융위 TF 퇴직연금 손질 퇴직연금 선진국엔 '원리금 보장형' 없어 '물가상승률조차 못 이긴' 초저위험에 88% "가입자 선택 폭 줄여야" vs "이분법 위험"

2024-07-22     허아은 기자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시행이 1주년을 맞이했지만 예상보다 저조한 수익률을 냈다. 디폴트옵션 도입의 본래 취지에 따라 원리금 보장형 상품 및 초저위험 선택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연합뉴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사전지정운용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함에 따라 관계 부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개선 대책을 논의한다.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대로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편입을 제한하고 다수 가입자가 '초저위험' 등급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선택을 제한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금융위원회 등은 TF를 구성하고 퇴직연금 제도 전반에 관한 개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TF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제도의 개선 방안에 관해서도 논의할 전망이다.

디폴트옵션 제도는 근로자가 직접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DC)형 또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투자 상품의 만기가 도래했을 때 가입자가 적립금을 운용할 방법을 지시하지 않으면 퇴직연금 사업자인 민간 금융회사가 자동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가입자는 사전에 운용 방법을 지정한다.

디폴트옵션은 자산운용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를 대신해 금융회사가 자산을 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저조한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리라는 기대하에 지난 2023년 7월 전면 시행됐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을 1년간 시행한 결과 해당 상품의 수익률이 예상치보다 저조해 당국이 손질에 나선 것이다.

디폴트옵션 시행에도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로는 고위험 투자가 불가능한 '원리금 보장형' 또는 '초저위험' 상품을 골라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힌다.

한국은 미국, 영국, 호주 등 퇴직연금이 발달한 주요 선진국의 디폴트옵션 제도를 벤치마킹해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 중 원리금 보장형 디폴트옵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없다.

한국과 일본만이 원리금 보장형 디폴트옵션 상품을 판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디폴트옵션 상품이 위험 등급별로 나뉘어 가입자가 사전 지정할 수 있다는 점도 수익률 개선을 어렵게 한다. 위험 등급은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으로 매겨지며 가입자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가입자가 위험 등급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체제에서 다수의 가입자는 위험이 낮은 대신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위험 회피적 선택을 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 약 479만명 중 원리금 보장형 100%의 초저위험 상품을 선택한 사람은 422만명에 달하며 전체의 88.1%를 차지했다. 저위험 상품에는 24만명이, 중위험과 고위험 상품에는 각각 20만명, 13만명이 가입하면서 위험도가 높은 상품일수록 가입자 수는 적어졌다.

다수의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가입자가 선택한 초저위험 상품의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저위험 상품의 수익률은 6개월 기준 1.77%, 1년 기준 4.56%로 집계됐다. 연간 물가 상승률이 3%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저조한 수준이다.

'수익률 제고'라는 디폴트옵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해당 상품에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는 등 가입자의 선택 폭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호선·김성일·유현경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원은 '퇴직연금의 노후 소득 보장 기능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한 이후에도 의무적으로 근로자 개인이 다시 상품을 지정해야 한다는 것은 디폴트 제도의 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원리금보장상품이 들어가는 것을 제한하거나 디폴트로 운용될 상품은 가입자가 직접 고르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과 회사, 근로자 대표 등의 협의 후 결정하는 쪽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원리금 보장형 상품과 위험 등급 선택을 제한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처음 디폴트옵션이 도입될 때 국내 업계가 보유한 초저위험 퇴직연금 상품이 많았었기에 디폴트옵션에도 원리금 보장형이 들어간 것"이라며 "해외 사례와 한국의 현실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쁨을 흑백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디폴트옵션 상품을 비롯한 퇴직연금 전반의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가입자의 관심도와 지식수준 제고와 함께 금융회사의 다양한 상품 개발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연금 가입자들은 가입해 놓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무관심을 비롯한 지식 부족에서 기인한다"며 "특히 요새는 자산을 운용할 때 글로벌 시장을 고려해 운용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선임연구위원은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하고 다양화된 측면이 없어 시장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단기적이기보다는 중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상품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