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아픔 딛고···K원전 생태계 부활 ‘축포’ 터뜨렸다

원전 강국 프랑스를 유럽 안방에서 제쳐 수주전 승리의 비결은 ‘온 타임 온 버짓’ 2기 건설에 24조원, 2기 추가땐 40조원

2024-07-18     유준상 기자
체코 신규 원전 예정 부지 중 하나인 두코바니 전경 /제공=대우건설

한국 원전이 체코에서 사업비 24조원 규모의 신규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을 수주했다. 원전 수출로는 사상 최대이자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이룬 성과다. 

향후 체코가 추가로 원전 2기를 지을 경우 총수주액은 최대 40조원을 웃돌게 돼 20조원이었던 바라카 원전의 2배 이상 규모로 평가된다. 탈원전의 아픔을 딛고 한국 원전 생태계 부활의 축포를 터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체코 두코바니와 테믈린 지역에 1000㎿(메가와트)급 원전 4기를 짓는 신규 원전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이 선정됐다. 체코는 우선 두코바니 5·6호기 건설을 확정하고, 테믈린 3·4호기에 대해선 향후 건설 여부를 확정하기로 했다. 

이번 신규 원전 사업의 예상 사업비는 1기당 2000억 코루나(약 12조원)다. 한수원과 발주사인 EDUⅡ는 내년 3월까지 계약을 마무리하고, 2029년 공사를 시작해 2036년부터 상업 운전에 들어갈 계획이다. 

K원전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시공이나 유지 보수 사업을 수주한 적은 있지만, 원전 노형(모델)부터 건설, 시운전까지 전체를 수출하기는 UAE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전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생태계 고사 직전까지 갔던 원전 업계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사실 체코 원전 수주는 2022년 3월 입찰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전망이 밝지 않았다. 체코 정부가 2016년 원전 건설 계획을 내놓은 뒤 미국, 프랑스는 물론 러시아, 중국 등도 관심을 키웠지만 자국에서 ‘탈원전’을 밀어붙이던 한국이 적극적으로 명함을 내밀기는 쉽지 않았다. 2021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체코 총리와 회담을 가지며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문 정부 5년 동안 국내에선 탈원전, 해외에선 원전 세일즈라는 모순된 정책 속에 스텝이 엉켰던 K원전 수출은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제대로 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정부는 국정 과제로 원전 생태계 회복을 내놓고 원전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루마니아·폴란드 등 동유럽을 중심으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에도 나토(NATO)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막판 수주전에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시공 능력과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를 통한 금융 지원도 가능해 체코 원전 분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작년 9월 한덕수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안덕근 산업부 장관도 지난 4월 체코를 직접 방문해 첨단 산업 R&D(연구·개발)를 확대하고 수소 생태계를 구축하는 등 현안에 대해 직접 논의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도 올해에만 세 차례나 체코를 찾았다. 지난달에는 체코공대와 함께 원전 전문가 양성을 위한 학부 커리큘럼을 공동 개발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원전 건설이 예정된 트레비치 지역 아이스하키 단에 대한 후원도 내년 8월까지 연장했고, 2017년부터는 매년 현지에서 봉사 활동도 펼쳤다.

민간의 노력도 큰 역할을 했다. 박정원 두산 회장은 지난 5월 체코 프라하 조핀 궁전에서 행사를 열었다. 얀 피셰르 전 체코 총리, 페트르 트레시냐크 산업부 차관 등 체코 정부 관계자를 비롯한 현지 금융·원전 업계 인사 등 300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체코가 유럽 내 무탄소 발전 전초기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특히 세계 2위 원전 대국인 프랑스를 안방인 유럽에서 꺾었다는 데 의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AI(인공지능) 확산에 따라 세계적으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K원전이 중동에 이어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온 타임 온 버짓(예산 내 적기 시공)’을 내세운 한국의 전략을 프랑스가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는 핀란드에 지은 올킬루오토 3호기가 예정보다 13년 늦게 전력을 생산했고, 2007년에 짓기 시작한 자국 내 플라망빌 원전은 아직도 완공하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사막이라는 지리적 약점과 코로나라는 돌발 변수에도 UAE 바라카 원전을 일정대로 건설하면서 세계 원전 업계에서 ‘온 타임 온 버짓’ 능력을 인정받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1982년 유럽형 원전을 도입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유럽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며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목표를 달성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앞으로 발주사와 상생할 수 있게 협력해 최종 계약을 맺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한국형 원전이 UAE에 이어 체코의 에너지 안보와 탄소 중립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