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 허브’로 부상하는 한국···시급한 과제는?
中 독주 견제하는 서방국가의 ‘러브콜’ 한국 해상풍력 파운드리 역량 높이 사 “규제 완화 위해 특별법 제정 반드시 필요”
한국이 ‘글로벌해상풍력연합(GOWA)’에 2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다. 저가를 앞세운 중국의 독무대를 견제하고 있는 서방 국가들의 ‘러브콜’에 따른 것인데, 이들은 중국을 대체할 한국의 해상풍력 파운드리(수탁생산) 역량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해상풍력 허브로 한국이 뜨고 있지만 대내적으로 내실을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소관 업무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어 사업 기간도 오래 걸리고 인허가를 받기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안방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 나라가 수출 경쟁력을 갖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과 함께 ‘해상풍력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하루빨리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은 GOWA에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하반기 가입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GOWA에는 현재 미국 영국 호주 독일 일본 등 20개 국가와 베스타스를 비롯한 글로벌 해상풍력 기업 6곳 등이 가입해있다.
GOWA는 중국이 회원사로 있는 세계풍력에너지협회(GWEC)의 대항마로 부상한 협의체다. GWEC는 중국을 포함한 80여 개 국가와 1500개사에 달하는 기업이 가입한 최상위 해상풍력 협의체이지만 GOWA의 출범으로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이 탈중국이라는 기치 아래 양분되고 있다.
GOWA는 출범(2022년 11월) 직후에도 우리 정부에 가입을 권했지만 당시 우리 정부는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덴마크 베스타스 등 풍력발전 기술에 특화된 글로벌 기업에 휘둘릴 수 있는 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다 미·중 무역갈등이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확대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GOWA는 터빈, 타워, 하부 구조물 등 풍력발전의 주요 기자재 제작뿐만 아니라 기자재를 실어 나를 전용 선박이 필요한데 중국 외에 이를 공급할 곳은 한국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 해상풍력사업 소관 부서 관계자는 “한국은 해상풍력발전소를 설립하는 데 필요한 밸류체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GOWA에 가입하면 미국과 유럽의 중국산 배제 움직임에 가장 큰 수혜를 보는 동시에 사실상 중국 시장과 결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풍력발전은 태양광발전과 함께 탄소제로 이행을 위한 핵심 인프라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예정된 세계 해상풍력발전 설치 용량은 248GW에 달한다. 5MW급 풍력발전기 약 5만개를 6년 안에 전 세계 바다에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까지 갖춘 중국의 독무대다. 풍력 터빈을 비롯해 하부 구조물, 타워 등 각종 기자재를 합치면 중국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은 후판부터 터빈까지 주요 기자재 제작뿐 아니라 전용 선박까지 해상풍력발전소를 짓는 데 필요한 밸류체인(공급망)을 모두 갖춘 유일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탈중국을 꾀하는 GOWA가 한국을 생산 거점으로 낙점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설계를 맡고 핵심 제작은 한국이 담당하는 글로벌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이런 상황에 국내 시장은 각종 규제와 민원에 발목 잡혀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현재 국내에서 해상풍력 사업을 하려면 산업부·해양수산부·국방부 등 여러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총 29개에 이르는 인·허가를 받고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이해관계자를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안는다.
인허가 업무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다 보니 사업을 시작해 시행하는 기간까지 평균 8년, 많은 경우 10년이 소요되는 실정이다. 사업자가 선뜻 해상풍력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안방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 나라가 수출 경쟁력을 갖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해상풍력 특별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특별법은 개별 사업자가 허가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가 국내 해상풍력 발전사업 전반을 직접 관할해 입지를 확보하고 각종 인·허가 문제를 풀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사업자는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창구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해상풍력특별법 제정안은 21대 국회 때 4년간의 오랜 논의 끝에 법 제정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통과하지 못한 채 22대 국회로 넘어온 상황이다. 성진기 풍력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특별법 제정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21대 국회에서 통과하지 못했다”며 “커지는 각국 환경 규제를 고려했을 때 22대 땐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현실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모아 현실적인 법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수년의 노력 끝에 사업권을 확보한 기존 사업자들을 정부 주도의 ‘새 판’에 어떻게 끼워넣느냐는 관건이다. 일괄적으로 지분을 부여하기엔 사업자의 사정이 제각각이고 개중에는 이권만 챙기고자 뛰어든 ‘가짜 사업자’도 있어 분별이 필요하다.
최우진 코리오제너레이션 한국 대표이사는 여성경제신문에 “기존 발전사업허가는 사업자가 어업인, 지자체 등과 끊질기게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 얻은 결과물로 이 과정에서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한 전투력도 확보한 상황"이라며 “기존 사업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더 빠른 해상풍력 보급을 위해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특별법 안에 기존 사업자에 대한 편익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