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2억원'··· 시세 10배 부동산 치매 노인에게 판 일당들

부동산 업자 사칭해 치매 노인에게 접근 같은 수법 치매 환자 50명에게 1억 갈취

2024-07-10     김현우 기자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연합뉴스

시세의 10배. 2500만원 상당의 낡은 아파트를 2억9000만원에 팔아넘긴 일당이 경찰에게 잡혔다. 아파트를 구매한 매입자는 다름 아닌 치매 노인. 

10일 '테레비 아사히(아사히TV)'에 따르면 일본에서 80대 치매 노인에게 시세의 약 10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부동산을 판매한 일당이 체포됐다. 치매 노인만을 상대로 조직적인 범죄를 꾸민 것으로 의심된다고 아사히TV는 보도했다.

일본 경찰은 지난달 25일 혼자 사는 80대 여성 치매 노인에게 부동산 계약을 맺게 해 돈을 뜯어낸 남성 4명을 체포했다. 이들 용의자는 인터넷 부동산 업자라고 사칭하고 노인의 집을 약 20차례 방문했다.

이들은 약 300만 엔(한화 약 2500만 원)을 주고 사들인 낡은 아파트 방 하나를 이보다 10배 이상 더 높은 가격인 3400만 엔(약 2억 9000만 원)을 받고 노인에게 팔았다. 또 같은 수법으로 치매 환자 등 약 50명으로부터 약 1억 3000만 엔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보유한 80세 이상 고령자 9만 명의 전화번호 등이 담긴 명단을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일당은 80대 여성 노인을 속여 자신들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노인 명의의 계좌를 개설한 뒤 함께 금융기관 창구를 찾아 해당 계좌로 거액을 이체하고, 다시 본인들이 관리하는 계좌로 송금하는 수법을 썼다.

일본에서는 경제력이 있는 연령층으로 65세 이상 고령층이 꼽힌다. 치매 노인 인구도 증가하고 있는데, 범죄 일당은 치매이면서 자산이 있는 고령층을 계획적으로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21일 일본 내각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고령사회백서 2023’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가구가 저축한 금액의 평균값은 2414만 엔(약 2억 192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일본 내각부는 평균 수명 등을 고려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해 필요한 저축액은 2000만 엔(약 1억 8161만 원)으로 보고 있다. 이를 뛰어넘은 금액을 저축해 둔 세대는 조사 대상의 43%에 달했다. 또 세대원 모두가 65세 이상인 고령 세대 가운데 12.2%는 저축액이 4000만 엔(약 3억 6352만 원)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치매 노인이 보유한 금융 자산만 142조 엔(약 1219조 원), 부동산 자산은 68조 엔(약 584조 원)으로 총자산 규모는 210조 엔(약 1803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태엽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노인들은 자산은 많지만 낮은 금융 이해력 혹은 인지능력 감퇴 탓에 금융 생활에서 소외되거나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노인의 금융 자산을 유용·갈취하는 행위를 ‘재정적 학대’로 정의하고 있는데, 2022년 6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60살 이상의 6.8%가 이러한 학대에 노출돼 있다고 세계보건기구는 추정한다.

국내에서도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예방책 마련에 힘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노인에 의한 범죄 비율이 5.3%에서 10%로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형국 한국형사법학회 고문은 2017년 대한민국학술원논문집에 발표한 논문 ‘노인범죄와 형사정책적 대응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노인범죄의 원인을 찾아내 그 예방과 진압에 힘쓰는 일은 단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관련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개별적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 또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고문은 "노인을 사회적 약자로 보지 말고 형벌의 엄정성에 근거한 형벌적용을 강조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노인은 가정과 사회의 원로인 만큼 예우에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 기타 업무의 효율성과 노인의 안정을 기하려면 이들 업무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노인안전법과 노인전담경찰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