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 눈치 보는 식품업계···원재룟값·물류비 상승에 '시름시름'

정부, 외식 및 식품업계에 가격 인상 자제 요청 정부 압박에 가격 인하하거나 인상 시기 미뤄 원재룟값 외에 제반 비용 상승해 인상 요인 누적

2024-07-09     류빈 기자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정부가 식품·외식업계에 올 하반기에도 식품·외식 물가 안정을 위해 가격 인상 자제를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각 기업은 정부의 압박 속에서 우선은 동조하는 분위기지만 원재료, 인건비 등 가격 인상 요인이 쌓이고 있어 속앓이가 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향후에 더 큰 폭으로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훈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농식품 수급·생육 상황 점검 회의'에서 "지난달 외식 물가가 3% 상승률을 기록했다"며 "식품·외식업계는 국민 물가 부담 완화에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달 외식 물가 상승률은 3.0%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2.4%)을 웃돌자 정부가 업계에 물가 안정 기조에 동참해 달라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외식 물가 상승률과 달리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1.2%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대비 낮은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한 차관은 "정부 정책에 대한 업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정부는 식품기업들에 꾸준히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 왔다. 이에 따라 농심은 지난해 7월 1일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했다. 삼양식품도 지난해 7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 가격을 평균 4.7% 인하했으며, 오뚜기도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0% 인하했다.

지난 5월에는 롯데웰푸드가 원재료인 코코아 가격의 상승으로 초콜릿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했으나 정부 요청에 따라 인상 시기를 한 달 늦춰 지난 6월에 가격을 올렸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업체들도 이달부터 기업 간 거래(B2B) 설탕 제품 가격을 약 4% 내렸다. 이 역시 정부 요청에 따라 원당 국제가격 하락을 반영하고 물가 안정 기조에 협조해달라는 데 따른 것이다.

설탕 원재료인 원당 가격은 지난 2022년 6월 파운드당 18.8센트(약 260원)에서 지난해 11월 27.9센트(약 390원)까지 올랐다가 점차 하락해 지난 19일 다시 18.9센트(262원)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는 원재룟값이 하락했기 때문에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하지만, 정작 업계에선 원재룟값만 드는 게 아니라 수입 비용, 인건비, 유류비 등의 제반 비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가격 인상 요인이 쌓이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에 정부의 가격 개입이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식품업계는 통상 3개월 이상의 원·부자재 재고분을 비축해 둬야 해서 일정 단가에 미리 계약하는데, 현재 원부자재 시세가 하락했다고 해서 당장 판매가를 조정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입 비용이 증가했고 원재룟값이 최근 안정세를 찾았다 하더라도 예년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며 "여전히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식품업계만을 옥죄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품업체의 경우 원가 비중이 높은 데다 판매 가격 역시 비싸게 팔지 못하는 제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식품업계 영업이익률은 타 제조업계에 비해 낮은 한 자릿수대에 그친다. 올해 1분기 기준 오리온(16.1%) 등을 제외하고 빙그레(9.0%), CJ제일제당(6.1%), 오뚜기(6.1%), 농심(5.6%) 등 주요 식품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이 대부분 한 자릿수에 그쳤다. 통상적으로 다른 제조업계의 영업이익률이 10%가 넘는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특히 식품업계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국제 곡물 가격과 유가는 여전히 상승세를 보여 올 하반기에도 원재료 부담은 심화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4로 전월보다 0.9% 올랐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해 1월 117.7에서 2월 117.4로 하락했으나 3월 119.0, 4월 119.3, 지난달 120.4로 석 달 연속 상승했다. 특히 지난달 곡물 가격지수는 118.7로, 전월 대비 6.3% 상승했다. 유제품 가격지수는 126.0으로, 전월 대비 1.8% 올랐다.

식품업계에서는 여전히 수익성 하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가격 인상 자제는 단기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물가가 상승하면 원자재 가격뿐만 아니라 부대비용 등 모든 것이 상승한다"며 "정부에서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해도 이를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