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는 사장님, 절대 안 된다는 근로자···내년도 최저임금 차등 없다
전원회의서 반대 15표, 찬성 11표 "헌법 훼손하며 적용할 필요 없어" "최저임금 인상·일률적 적용 부담"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현재처럼 업종별로 달리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경영계는 "일부 업종이라도 구분 적용하고 최저임금 수준도 반드시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노동계의 거센 반발에 막혔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2일 최저임금위원회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 적용할지 표결한 결과 반대 15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현행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를 두고 노사는 지속해서 대립해 왔다.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사용자 단체가 주장하신 업종의 경영난과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문제인 불공정거래, 비정상적인 임금구조, 과다경쟁 문제 등을 개선해야만 해결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다른 근로자위원인 이미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차등 적용이 가능하다는 선례를 만들어주면 또 다른 업종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노동시장 전체의 임금 하락 효과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최저임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을 정하는 문제는 준비가 부족하고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헌법과 최저임금법을 훼손하며 업종별 차등 적용을 논의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최저임금의 차등화를 간절히 바랐던 편의점주 등 소상공인과 중소기업계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7년간 최저임금이 획일적으로 52.5% 급등하면서 이들 영세 사업자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전날 회의에서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어려운 상황에는 그간 누적된 최저임금 인상과 일률적 적용이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며 "일부 업종이라도 구분 적용하고 최저임금 수준도 반드시 안정시켜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용자위원인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 정책본부장도 "노동시장 외부자, 즉 은퇴한 고령자, 미숙련, 청년, 경력 단절된 여성의 경우에 취업하지 못하면 저임금이 아니라 무임금 상태에 있게 된다"며 "이들의 소득을 높이려면 취업 기회를 제공하여 임금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의 노동 생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업종 내 기업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아서 구분 적용되는 취약 업종 내 취약 기업에 취업할 확률이 높다"며 "이들을 좀 더 많이 고용하여 소득 분배 개선을 달성하려면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숙박·음식업 40% 최저임금 감당 어려워
최저임금 차등 적용 근거 필요 지적도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숙박·음식점업의 '취업자 1인당 부가가치'(종업원 한 명이 창출한 부가가치액)는 2521만원으로 제조업(1억2187만원)의 20.7%에 그쳤다. 숙박·음식업의 최저임금 미만 비율은 37.3%로 전체 업종 중 가장 높다. 열 곳 중 네 곳이 법률이 보장하는 최저임금(시간당 9860원)을 직원들에게 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과학적 통계가 부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익위원은 2022년 심의에서 차등적용 관련해 기초통계 연구용역을 정부에 권고했으나 '원자료의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결론이 났다. 5년 간격으로 조사하는 경제총조사 등 국가 통계자료가 시간당 최저임금 논의 자료로 활용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2016년부터 최저임금위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졌지만 표결 과정을 거치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올해는 한국은행이 지난 3월 '가구들의 돌봄 서비스 부담을 덜기 위해 돌봄 분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관련 논의에 더욱 불이 붙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달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현행보다 '더 낮은' 최저임금 설정을 위해선 법 개정을 통한 추가적 근거 마련 및 설득력 있는 통계를 통한 과학적·객관적 입증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최저임금은 헌법에서부터 사람들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소득의 최저 기준으로 설정돼 있다"며 "어떤 업종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차등화한다는 얘기는 헌법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이 안 좋은 영향을 준다'라고만 얘기할 게 아니라 보완하는 조치를 같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