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여성 전용'인데 남자도 들락날락···집주인 따라 달라지는 규제 범위

건물마다 다른 관리‧규제 정도 불안감 느끼는 입주자 여전해 임대인 재량···법적 장치 미비

2024-07-03     김정수 기자
3일 서울시 대학가에 위치한 한 부동산에 붙은 전단. 여성 전용 매물이 포함돼 있다. /김정수 기자

# 서울시 한 대학가에 위치한 여성 전용 오피스텔. 입구엔 '여성 전용' 안내 표시가 있지만 저녁이 되면 여성과 함께 들어가는 남성도 눈에 띈다. 일 년째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여성 전용 거주지를 찾아 입주했는데 불안감을 더 느낀다. 배달 기사가 들어올 때마다 흠칫한다"고 토로했다.

여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여성 전용 주거 공간 수요가 늘고 있지만 남성 출입 제한에 대한 관리‧감독이 허술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일부 여성 전용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입주자들은 여성 전용임에도 남성 출입에 대한 느슨한 관리‧감독에 불편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상 '남성 출입 금지' 항목을 명시를 하지 않거나 명시해도 임대인 관리에 달려있다 보니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30 여성 1인 가구는 △2020년 61만6760명 △2021년 66만4826명 △2022년 67만9168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범죄에 대한 우려 등으로 여성 전용 주거시설도 늘어났다. 본지와 이날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여성 전용 건물을 찾는 젊은 고객들은 꾸준히 있는 편"이라고 했다.

여성만 입주할 수 있는 여성 전용 주거시설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지만 일부 입주자들이 남성인 지인, 연인, 가족과 함께 출입하는 등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여성 전용 빌라에서 2022년~2023년 1년간 거주했던 박모 씨(여‧22)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여성 전용이지만 건물 내엔 항상 남자가 있었다. 옆집 입주민은 본인 남자 친구와 동거하는 수준이었다. 남성인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은 집주인이 아예 제지하지 않았다. 남성인 배달원, 택배 기사도 모두 들락날락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입주할 때 계약상 '남성 출입 금지'가 명시돼 있었는데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집주인에게 불만을 제기하자 해당 주민은 며칠 남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지만 한두 달 지나자 똑같았다. 집주인은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반응이었으나 규제가 잘 이뤄지진 않았다"며 "여성 전용 건물이라고 보안이 잘된다고 느낀 적은 없다. 공동 현관도 없어서 오히려 범죄에 더 취약할 것 같아 무서웠다. 배달원이 올 때 가장 불안했다"고 전했다.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여성 전용 학사(입시학원)에 지난 2020년 한 달간 거주했던 문모 씨(여‧22)는 "남성이 출입하는 경우는 부모님을 제외하곤 없었다. 관리인 부부 제외하곤 외부인 출입이 금지였다"며 "계약상 남성 출입 관련 명시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대학가에 있는 한 여성 전용 오피스텔 간판 /김정수 기자

계약상 남성 출입 규제에 대한 명시와 입주 시 관리 정도가 건물마다 다른 것이다. 여성 전용의 의미가 여성 입주자만 받겠다는 의미와 출입 자체를 여성만 한다는 의미로 각각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서울 서대문구 대학가에 위치한 A 부동산 공인중개사 B씨는 여성경제신문과 만나 "여성 전용 주거시설에 남성 출입을 규제하는 어떠한 법, 장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남성을 데려오면 퇴출 조치를 한다. 이웃이 민원을 넣으면 집주인은 일정 기간까지 나가라고 하는 편"이라면서도 "다만 퇴출까진 시키지 않거나 신고가 들어오지 않는 한 먼저 규제하지 않는 건물도 있다. 한 건물의 주인이 단독으로 1명이라면 관리도 본인이 하기 때문에 공실이 될까 봐 퇴출 조치까진 하지 않는 것. 단지 '거주자'를 여성 전용으로 할 뿐이다. 관리실이 별도로 있는 경우는 대부분 관리‧감독이 잘 이뤄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근처는) 여성 전용 오피스텔 계약 시 계약서에 따로 명시하진 않고 구두로 가족 외 남성 출입은 안 된다고 주의 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한편 여성 전용 오피스텔이 차별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됐다. 지난 2021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작성자는 "집주인이 세입자를 (여성만으로) 받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남자는 집을 더럽게 하거나 소음을 낸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면 잠재적으로 남자는 다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전문가는 여성 전용 주거 공간에 대한 법적 장치가 미비한 만큼 임대인과 임차인의 세심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법적인 장치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임대인이 규제를 소홀히 한다고 해서 어떠한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개인에게 엄격한 관리를 요구하는 방법밖엔 없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도 "여성 전용 주거시설에 남성이 들어와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가중 처벌이 되는 등 처벌 수위가 달라지진 않는다. 일반 주거 침입 범죄와 동일 선상으로 본다. (다르게 처벌할) 법률적 근거가 없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