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전지적 냥이 시점
[송미옥의 살다보면2] 성인 동화로 풀어본 며칠 전의 이야기
나는 족보가 뚜렷하지 않은 고양이 ‘치즈‘랍니다. 지금 사고를 치고 불안에 떨고 있어요. 나는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길냥이가 될 때도 있고 사냥하는 것을 보면 들냥이라 부르기도 해요. 가끔 낯선 사람을 만나면 긴 발톱으로 할퀸 적은 있지만 이빨로 물진 않았어요. 그런데 방금 주인 할머니가 나에게 팔뚝을 심하게 물려 응급차로 병원에 갔어요. 순간의 실수로 나는 유해 동물이 되었지요.
나를 예뻐하던 이웃 사람들이 말했어요.
‘119를 불러 잡아라.
동물보호 센터에 연락해서 잡아라.
사람을 해치는 녀석은 붙잡아 죽여야 한다’ 등등.
내가 착하게 살다가 순간에 사고를 치듯, 사람의 마음도 순식간에 변해요. 그래서 나는 잡히기만 하면 묻지도 따질 것도 없이 곧 사형이 된답니다. 그곳은 인간이 만들어 우리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무서운 곳이지요. 나는 내가 잘못을 했어도 도망칠 수 있을 때까진 도망 다닐 거예요. 그래도 초조하고 불안한 건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지금 나는 나름 이유를 들어봐 달라고 할머니 마음에 하소연해 봅니다. 내 형제는 6남매였는데 나는 꼬리가 없는 기형으로 태어났답니다. 엄마는 동물 종족의 본능으로 기형이고 빌빌한 녀석들은 버리고 똘똘한 녀석들만 데리고 살아야 했어요. 하긴 집도 절도 없는 신세인데 그 많은 식구를 다 건사할 수는 없겠지요. 엄마는 성치 못한 저를 이곳 하수구 한쪽에 데려다 놓았어요.
“살고 죽는 건 신의 뜻, 너의 윗대 어른도 나도 이곳에서 살아남았어. 너도 꼭 살아라.“
나에게 울음소리를 가르쳐주고 밖으로 나간 엄마도 한참을 서성이며 울어주었지요. 컴컴하고 어두운 이곳에서 울다 지쳐 쓰러질 즈음 주인 할머니가 나를 발견했어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와 겨우 살아났답니다. 엄마는 슬쩍슬쩍 나의 생사를 확인하러 다녀가곤 했어요. 얼마 후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서 엄마가 잡혀간 걸 알았어요. 엄마도 길에서 태어나 형제도 많았대요. 이웃 부잣집에 엄마 형제 중 가장 예쁜 이모가 입양 가 있었답니다. 그 집 밥은 유난히 맛있어서 마음 착한 이모는 엄마를 몰래 부르곤 했대요.
그날도 몰래 들어가 밥을 얻어먹다가 주인아줌마에게 들켜 쫓겨났어요. 섭섭한 마음에 인상을 쓰며 화를 조금 냈을 뿐인데 아무 해꼬지도 안 했는데 밥 조금 축낸 걸로 도둑이라고 신고를 했다지 뭐예요. 엄마는 단박에 달려온 동물보호센터의 유기 동물 포획단에 잡혀갔지요. 하필 우리의 보호자인 할머니가 여행 간 사이 벌어진 일이었대요. 그때도 나는 지금처럼 벌벌 떨며 숨어서 지켜보았어요.
밥을 주고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신 할머니는 나를 살게 해준 생명의 은인입니다. 가끔은 고양이를 키우는 따님 댁에서 몰래 간식도 훔쳐 와 내게 맛보여 주었답니다. 귀하게 길러진 따님 댁 고양이의 간식은 얼마나 맛있고 달콤한지 할머니 손에 들려있는 츄르 색깔만으로도 흥분이 되어 애교를 떨며 가르릉가르릉 노래도 했지요.
부모에게 버림받은 건 아무것도 모를 때의 일이니 죽든가 용케 살아나 삶이 고달파도 슬픈 기억이 없어요. 내 주위엔 사람들이 키우다가 마음에 변해 싫증 난 장난감을 버리듯 인적 없는 곳이나 빈집 같은 곳에 물건처럼 버려진 친구들도 많답니다.
그들은 상심이 커서 한동안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해요. 그러다 보니 그들은 우리 집을 기웃거리며 눈치껏 놀러 오곤 했어요. 할머니는 여기저기 밥을 내어놓고 굶지 말고 다니라고 하셨답니다.
나는 마당에서 살지만 가장 행복한 냥이었습니다. 간혹 며칠씩 집을 비우고 사냥을 가는 나를 오지랖 넓게 활동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대대손손 내려온 삶의 방식이고 내 마음속 주인은 한 사람뿐이랍니다.
나는 이곳에서 은혜를 갚기 위해 참 열심히 일했어요. 할머니가 밭에 나오면 나도 근처에서 조용히 앉아 함께 했지요. 가끔 최고조의 집중력으로 땅의 진동을 찾아 움직임을 포착해 농사를 방해하는 두더지를 잡기도 하고 블루베리가 익을 때면 호시탐탐 열매를 노리는 새를 다람쥐처럼 단숨에 낚아채고 쫓느라 종일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그렇게 지나간 내 생의 3년은 흐르는 강물처럼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답니다. 그 녀석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에요.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