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상법 보니 "이사는 회사에 복무"···"주주 고려"는 특수 케이스

주주자본주의 下 '회사'와 '이사' 일체 '회사의 이익'은 '주주의 이익'과 동일 韓 유독 대주주vs소액주주 갈라치기

2024-06-27     이상헌 기자
26일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한국경제인협회 등 재계가 개최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 참가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전문가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회사를 위하는 것이 주주 이익을 위하는 것에 이견은 없다. 다만 지금이 주주들의 권리 행사가 촉진되고 모든 주주가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도록 하는 기업지배구조 논의를 위한 골든 타임인 것은 분명하다."

26일 금융감독원 후원으로 한국경제인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가 개최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부 내에서 내용이나 방향이 정해진 건 진짜로 없다"면서 상법 개정 논의가 기업 법제 선진화에 방점이 맞춰져 있음을 강조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원인이 기업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주장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대표 정의정) 등 동학개미 단체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윤석열 정부는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현행 상법 382조의 3에 '주주의 이익'이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개정을 검토한 바 있다.

또 금융권 일각에선 자본시장법 특례 규정에 주주 이익을 이사의 충실 의무로 담는 방안도 제기됐다. 다만 상장 대기업에 먼저 적용하고 일반 회사로 넓힌다는 발상은 가족기업과 같은 폐쇄형 기업(Close Corporations)에 한정해 주주에 대한 의무를 적용하는 글로벌 스탠다드 및 기업 상식과 동떨어진 것이란 지적을 받는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 또는 '총주주' 문구를 기존의 조항에 삽입하자는 주장의 오류에 대해선 강성부 KCGI 대표와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을 제외한 대부분 패널이 공감했다. 따라서 외국 사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통해 '회사'와 '이사' 그리고 '주주'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시각차를 좁혀가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먼저 영국의 회사법 제228조 제1항 제a호는 "이사가 회사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선의로 행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국 법원 역시 "회사의 이사는 단순히 이사라는 그 지위만으로 주주에 대하여 충실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일반론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Valid Nielsen Holding A/S v. Baldorino Case 2019).

일각에선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영국법을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개편안을 뒷받침하는 외국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입법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해관계 충돌 시 이사의 의무를 강조한 것일 뿐 총주주는 물론 대주주와 일반(소액)주주를 이분법적으로 편 가르기 하면서 이사에게 충실 의무를 부여한 증거는 없다.

'특별한 상황'이나 '특수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 이사가 주주에 대한 신인 의무를 지는 내용은 현행 국내 상법에도 포함돼 있다. '주주총회 위임 규정'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공동대표 선임 △신주 발행 △준비금 자본전입 △전환사채 발행,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에 관한 결정은 본래 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돼 있지만 주주총회로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장기업회관에서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등이 공동 주최한 '기업 밸류업 지배 구조 개선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주총회가 이사회 대신할 수 있나?
현행 상법 체계에서 주주 고려 가능

국내 학계에서 이철송 건국대 석좌교수 등 원로 상법학자가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에 '주주' 포함을 반대하는 이유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절대적인 명제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 이해관계자 전원의 동의가 이뤄져 정관으로 규정된 사안에 대해선 이사회 승인을 주주총회 승인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측에선 "주주에 대한 고려라는 표현으로 완화해 단서로 달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절충론도 나온다.

이날 세미나 발제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이사 책임제도 개선 방안(권재열 경희대 로스쿨 교수) △경영권 방어 법제 도입 관련 쟁점(김지평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기업가치 향상을 위한 기업승계제도 개선 방안(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 총 세 파트로 진행됐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권종호 건국대 로스쿨 교수가 주재한 종합 토론이 끝날 때까지 장장 3시간 자리를 지켰다.

주주자본주의 또는 주주 우선주의 체제에선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일치하는 것이므로 이를 분리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추가한다는 것은 설익은 주장이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반면 강성부 KCGI 대표는 국민을 가스라이팅하는 논리라면서 미국 델라웨어 회사법 제102조(주주에 대해 이사로서 부담하는 신인 의무를 위반함으로 인한 금전적인 손해에 대해 이사의 개인적인 책임을 면제 또는 제한)를 꺼내 들었다.

권재열 교수는 이와 관련 "델라웨어 주대법원은 이사뿐 아니라 임원 역시 회사 및 주주들에게 신인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회사에 이익이 되면 주주에게도 간접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일반론적 차원으로 이해하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비슷한 예로 미국 캘리포니아 회사법(§ 309)을 보면 "이사는 선의로 회사와 그 주주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고 믿는 방식으로 보통의 신중한 사람의 주의로써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로스쿨 명예교수 역시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판례에서 흔히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문구로 회사와 이사를 달리 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이사를 일체로 보는 문구일 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