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으려 후견인 지정했더니 직업 제한···장애인 울리는 후견제도

직업 결격 조항 명시된 피후견인 '잔존 능력' 존중 안 하는 현 제도 입법 활동 이뤄지지만···효과 미미

2024-06-20     김정수 기자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존엄한 인격체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취지다. 하지만 각종 직업의 퇴직·결격 조항에 제도 이용자들을 결격사유로 명시해 직업을 제한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장애인, 경계선 지능인 등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을 다방면에서 돕는 후견인 제도가 오히려 각종 직업‧자격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성년후견제도'는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존엄한 인격체로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취지다. 하지만 각종 직업의 퇴직·결격 조항에 제도 이용자들을 결격사유로 명시해 직업을 제한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법원 전자민원센터에 따르면 성년후견제도는 지난 2013년 7월부터 시행돼 질병‧장애‧노령 등의 사유로 인해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들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사무처리 능력이 떨어진 성인에게 후견인을 지정해 본인 대신 재산을 관리하고 치료, 요양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성년후견제도의 후견은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법정후견에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이 있다. 성년후견은 중증 치매 등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상당 기간 결여된 상태에 개시한다. 한정후견은 경미한 증상으로 일시적으로 판단 기능이 약해지는 경우에 개시한다. 해당 이용자들을 각각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이라고 칭한다.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기반으로 후견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다.

다만 이용자들은 대부분 후견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정신적 제약의 정도나 행위능력 범위와 상관없이 성년후견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행 후견 제도가 성년후견・한정후견 등을 구분해서 규정하고 있는 취지와 다르게 실무상 통계를 보면 결과적으로 개시된 후견의 80~90% 이상이 성년후견이다"라며 "제도에 대한 이해에 앞서 막연하게 (강한 제약이 들어갈 수 있는) 성년후견을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부분의 직업‧자격 결격 조항에는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이 포함돼 있다. 피한정후견인은 경미한 증상으로 직무 수행 능력이 있는데도 각종 자격 취득 등에서 배제되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19년부터 꾸준한 문제 제기로 '피한정후견인'이 조항에서 삭제된 직업‧자격도 있다. 지난 1월에는 사회복지사업법 제11조의2 제1호가 개정되면서 사회복지사에 포함된 '피한정후견인' 결격 조항이 삭제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으로 구성된 성년후견제 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공무원법 제33조 제1항은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은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인권 침해"라며 위헌 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조차도 '피한정후견인'에 한정한 개정안이며 수백 개에 달하는 직업별‧직군별 법률 결격 조항을 일일이 삭제하는 것이 피후견인의 직업 제한을 해결하는 방법일지에 대해선 여러 의문이 제기된다.

조미연 변호사는 "후견을 결정하는 심판 과정에선 특정 직업적 능력이 결여되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각 직업에서 요구하는 직업적 능력과 후견이 필요한 부분을 구분하지 않은 채 일률적이고 구체성 없이 피후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 선택에 제한을 가져오는 것"이라며 "중대한 기본권 침해이며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돌보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2019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피후견인 결격 조항 폐지의 필요성과 입법과제'에 따르면 피후견인 결격 조항의 원조인 일본에서는 187개 법률에 산재해 있는 결격 조항을 2019년 6월 일괄 법률로써 폐지했다. 피후견인 결격은 비교법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본의 독특한 제도인데 별다른 비판 없이 국내 행정 법령에 계수돼 법률 이외에 조례 등 자치법규, 회사의 정관, 심지어 아르바이트 모집공고까지 확대‧재생산됐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는 일괄 폐지된 것이다.

조 변호사는 "(직업별) 법률을 일일이 바꾸는 것이 의미 없진 않지만 법률이 갖는 공통된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일률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며 "피후견인에 대한 직업 제한 법령은 아예 자격에서 배제하는 결격 사유 형식부터 원칙 허용-일부 제한, 원칙 제한-일부 허용 등 여러 방식으로 규정돼 있다. 하나씩 바뀌어 왔다고 하지만 수백 개에 달하는 제한 규정들이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사회복지사 결격 조항에서 피한정후견인이 삭제된 것도 그로 인해 차별받은 피후견인 사건을 통한 문제 제기와 그 과정에서 이뤄진 입법 개선 운동 등 갖가지 노력이 일궈낸 결과"라며 "피후견인의 잔존 능력을 존중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전면적인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