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엄마와 단둘이 여행 가고 싶네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이효리 모녀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와 나의 모습을 돌아봤다
“이번에도 엄마랑 휴가를 다녀온다고? 정말 사이가 좋은가보다. 난 그 나이에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었는데, 확실히 우리 세대와는 다르네.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지금부터 10년 전쯤, 부서 후배에게 했던 말이다. 당시 막 서른을 넘긴 후배는 평소에도 엄마와 외식하거나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는 등 자주 외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40대였던 나에겐 후배의 모녀 관계가 특별하다 싶었다.
혹자는 MZ세대의 이런 모습을 사회경제적 상황 때문에 부모와 밀착할 수밖에 없다며 캥거루족과 연계하기도 하지만, 그 세대의 1인 가구 비율이 다른 세대보다 높은 걸 보면 그렇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 같다(202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조사된 1인 가구 중 29세 이하가 19.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30대는 17.3%였다). 그저 가족마다, 개인마다 성향과 상황이 다른 거라고 말하는 게 맞겠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는지에 따라 누군가를(무엇인가를)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가짐은 달라진다. 나만 해도 이전과는 달리 엄마와 오붓하게 어디든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느긋하게 마주 앉아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그 시절 말하기 어려웠던 그래서 늘 가슴 한편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수다로 포장해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기도 하고, 새삼스럽지만 마음속에 묻어둔 고마움도 표현하면서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엄마가 다니실 수 있을 때,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TV에서 방송 중인 전기순-이효리 모녀의 여행기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JTBC)를 내 이야기마냥 시청하고 있다.
40대 중반이 된 막내딸과 팔순을 앞둔 엄마가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엄마가 평소 가고 싶어 했던 경주와 거제를 다니며 온전히 서로의 시간을 공유한다. 딸의 연예계 데뷔 이후 바쁜 스케줄로 엄마는 TV를 통해 딸의 안부를 확인했고, 딸도 어릴 적 이후 함께한 시간이 없어 ‘엄마를 잘 모른다’라고 소개할 정도의 관계이니 이번 여행이 두 사람에게 특별한 시간이 되리라는 건 예상할 수 있다.
모녀는 여행하며 서로에 대해 묻어두었던 마음을 끄집어내고,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린 시절 부모의 다툼을 보며 싸울 것 같지 않은 남편을 만나게 됐다는 딸의 고백과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는데 생활이 힘들어서 그러지 못했다는 엄마의 회한을 나누며, 각자의 마음을 돌아보고 다시 한번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짜증 나고 서운했던 순간이 존재했던 여행의 처음과 달리 시간을 함께할수록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편안해지고 솔직해진다.
방송을 보며 거울을 보듯 나 역시 엄마와의 관계를 떠올렸다. 막상 큰일이 닥치면 걱정하고 해결하느라 엄마의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는 쉽게 짜증을 냈던 내 모습도,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고 잔소리로 마음을 대신하던 엄마의 모습도 겹쳐 보였다.
문제를 드러내고 인정하면 변화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나와 어차피 해결될 일은 정리되게 마련이니 굳이 어려운 상황을 말로 담아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태도도 비슷했다. 어쩌면 이건 대부분의 엄마와 딸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반성하게 된다.
자식을 낳아 키우며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의 시간과 마음을 내가 다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하고 조언하고 때로는 감정 섞인 말을 건넸으니 말이다. 방송 속 이효리처럼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게 하고, 관심 있어 했던 것을 해볼 기회를 마련하는 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의 여행! 긴 여행이 어려우면 짧은 외출이라도 해야겠다. 드라이브하며 초록으로 물오른 나무들도 한껏 바라보고, 좋아하는 노래도 틀어드리고 함께 부르면서 말이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알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갖고 싶소,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전기순 씨처럼 우리 엄마의 애창곡도 ‘나 하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