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선재 업고 대본집 들어? 상추 핀은 또 왜?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스타를 향한 응원의 마음은 세대 불문 '핫'해 드라마를 보거나 콘서트장에 가는 것 외에도 다양한 굿즈와 이벤트로 고유문화 만들어가

2024-06-03     홍미옥 모바일 그림작가
팬덤문화의 필수품인 연예인 굿즈 /그림=홍미옥

선재 업고 대본집 들어?

최근 인기몰이 끝에 종영한 웹툰 원작의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여러모로 화제 만발이다. 남녀 주인공에 관한 관심은 물론이고 드라마의 장면을 재현한 거리와 굿즈로 가득한 팝업스토어까지 성황 중이다. 최근엔 통 큰 대만 팬들이 뉴욕 타임스퀘어에 전광판 광고를 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과 시간 이동의 쌍방 구원 로맨스'는 시청자들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더불어 가져온 후폭풍도 심상치 않다. 특히 드라마 대본집의 판매는 물론 오픈하자마자 대기수가 60만이었다는 팬 미팅의 티켓구매까지 그 인기는 끝이 없다. 화면 속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손끝으로 눈으로, 직접 소통하며 기억하고 싶은 팬들의 심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극 중 등장하는 응원용 머리띠와 명찰까지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하니 더 재미있다. 팬들은 이미 머리띠를 하고 대본집을 들고 또 선재라는 콘텐츠를 업고 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나 같은 기성세대에겐 특이하지만 새로운 느낌도 든다. 솔직히 그 열정이 부럽다.

봄날의 난데없는 상추 물결

가수 백현의 콘서트장에 등장한 상추 머리핀 /사진=홍미옥

지난 3월의 어느 날이었다. 꽃샘추위가 물러간 화창한 봄 날씨는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집 근처 올림픽공원 산책에 나섰다. 여느 때처럼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때 이른 여름 운동복 차림의 조깅족들까지 공원은 날씨만큼이나 활기를 띠고 있었다.

콘서트가 열리는 티켓 판매처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기도 하는 등 봄날의 공원은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때 눈에 들어온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있었다. 아이돌 가수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그렇듯 전국, 아니 각국에서 몰려든 팬들로 북적이곤 한다. 하지만 그날 유독 특이했던 건 따로 있었다.

그룹 엑소 출신의 가수 백현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팬들의 머리에는 잎사귀 같은 게 올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잎은 상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니! 상춧잎을 머리에 달고 다닌다고? 정말?

뜨개실로 만든 상추 모양의 핀부터 얼핏 봐선 진짜 같은 헝겊 핀까지 다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처 핀을 구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생생한 팬심을 표현코자 했는지 모르지만 진짜 상춧잎을 머리에 달고 있는 무리도 있었다.

그런 광경을 처음 보는 나로선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봤다. 왜 다들 상추를 달고 있느냐고.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우리의 스타가 이걸 원한다. 스타와 팬의 소통이자 표현이다."

꽤 오래전에도 가수들의 콘서트장에는 응원 컬러가 정해져 있었다. 파랗고 노랗고 하얀 풍선으로 '내 가수'를 향한 마음을 맘껏 드러내곤 했다. 그래도…. 상추 핀은 내가 본 응원 용품 중에서 최고로 재기발랄했다.

스밍과 오팔

몇 해 전부터 각종 노래 경연이 인기를 끌면서 팬덤 문화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속칭 오팔세대(Old people with active life)가 그것이다. 첫 글자를 딴 줄임말인데 말 그대로 인생을 활기차게 즐기는 중장년을 말한다. 또한 5060을 넘어 7080까지 그 범위가 넓어진 팬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그 오팔 세대의 팬덤 문화는 가위 폭발적이다. 지하철 전광판이나 일명 '피케팅'이라 불리는 콘서트 예매 전쟁(?)까지 그들의 열정은 놀라울 정도다.

'스밍총공격' 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게임용어 아니면 컴퓨터상의 용어라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이 말은 신세대뿐만 아니라 오팔세대의 팬클럽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말이라고 한다. 스트리밍 총공격을 뜻하는 말로 내 가수의 음원을 계속 반복 재생해서 음원차트 상위에 올려놓는 작업을 말한다.

팬클럽 내에서는 7080 어르신 팬들을 위해 아래 세대가 수고를 대신하기도 한다. 내 스타를 응원하기 위해 같은 색의 유니폼을 맞춰 입고 알록달록 굿즈를 손에 든 오팔세대의 미소가 그려진다.

가수 윤하의 오르골과 그룹 퀸의 에코백 /사진=홍미옥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소위 연예인 굿즈라 불리는 물건이 내게도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좋아하는 '내 가수'가 있었다. 그룹 퀸의 내한 콘서트에 들고 갔던 에코백과 가수 윤하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오르골이 그것이다.

나는 대본집을 들고 튈 부지런함도 상추 핀을 꽂을 용기도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주 가끔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비타민 역할을 해준다. 누군가를 응원하고 애정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