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니콘 탄생 못 시킨 尹···벤처 혁신 저하→잠재성장률 추락

대기업들 R&D에 천문학적 투자금 퍼부어도 똘똘한 벤처 기업 생산성 증대 효과만 못해"

2024-05-26     이상헌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7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양자과학기술 현재와 미래의 대화'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 2년의 성과로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벤처나 유니콘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벤처 및 스타트업 중심의 '기업 혁신 활동' 제고가 없다면 잠재성장률도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2020년 말 국내 유니콘기업은 13개 사였으며 2021년에는 쿠팡(美, NYSE), 크래프톤(코스피) 등 2개 사가 졸업한 가운데 18개 사로 늘었다. 2022년엔 7개 사가 추가되고 3개 사가 상장 및 인수·합병으로 졸업하면서 22개 사가 됐지만 지난해에는 유니콘이 단 한 곳도 탄생하지 못했다.

26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혁신과 경제성장: 우리나라 기업의 혁신활동 분석 및 평가' 보고서를 보면 연구비 지원 및 산학협력 확대 등 기초연구를 강화할 경우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p) 오르고, 사회 후생은 1.3%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공급 여건 개선과 신생기업 진입 확대가 성장률과 사회 후생 증가에 기여한다는 분석으로 "기술 진보, 창조적 파괴(기존 혁신 대체) 등을 통해 장기 성장을 이끄는 주된 동력"이라면서 "한국이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지식 등을 활용해 경제 전반의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조태형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성장잠재력 약화에 대응하려면 경제 전반의 생산성 제고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로 크게 낮아졌다. 혁신 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을 의미하는 혁신기업(innovative firm)의 생산성 증가율이 2010년대 이후 오히려 더 크게 둔화한 점이 영향을 미쳤다.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R&D) 지출 규모는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1% 수준으로 OECD 회원국 상위권에 속한다. 미국에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실적이 우수한 혁신기업도 전체의 72% 내외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들의 생산성 증가율을 2001∼2010년 연평균 8.2%에서 2011∼2020년 1.3%로 크게 낮아졌다.

한국은행은 혁신기업을 규모와 업력에 따라 △대기업 △고업력 중소기업 △저업력 중소기업 등으로 나누고, 생산성 성장세가 크게 둔화한 배경을 살펴봤다. 이 결과 대기업이 전체 R&D 지출 증가를 견인하면서 양적 지표는 개선됐지만 특허 피인용 건수 등 생산성과 밀접한 질적 지수는 2000년대 중반 낮아진 이후 개선되지 못했다.

벤처 캐피탈 낮은 접근성 문제로
투자회수 시장 발전 더딘 게 발목

국내 기업가치 1조원 돌파 이력기업 및 현재 유니콘기업 현황. 2022년 말 기준 /중소벤처기업부

국내 기업이 미국에 출원한 특허 건수 가운데 대기업의 비중이 약 95% 정도에 달하지만 덩칫값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허 피인용 건수가 중소기업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은 것.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대기업이 파급력이 큰 질적 혁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특허를 출원한 신생기업의 비중은 2010년대 들어 감소세를 지속해 10%를 밑돌았다. 업력이 상대적으로 짧은(하위 20%) 중소기업의 생산성 증가세도 2010년대 이후 크게 둔화했다. 한국은행은 △기초연구 지출 비중 축소 △벤처캐피탈의 혁신 자금 공급 기능 부족 △혁신 창업가 육성 여건 미비가 혁신기업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 기업은 2010년대 들어 기초연구 지출 비중을 줄여왔다. 국내 기업 총지출 대비 기초연구 지출 비중은 지난 2010년 14%에서 2021년 11%로 10년 사이 3%p 낮아졌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민간 벤처캐피탈의 혁신 실적 제고 효과는 정부 벤처캐피탈보다 뚜렷하다"면서 "벤처캐피탈 접근성 문제로 투자회수 시장의 발전도 더디고 민간의 역할도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혁신잠재력을 갖춘 신생기업의 진입이 감소한 이유로 ‘창조적 파괴’를 주도할 혁신 창업가가 많이 육성되지 못했다는 점도 꼽았다. 미국의 경우 대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는 창업가는 주로 학창 시절 인지능력이 우수한 동시에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똑똑한 이단아'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한국에선 똑똑한 이단아가 창업보다 취업 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과 같은 교육환경과 사회 여건이 혁신 창업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똑똑한 이단아의 도전을 막고 있을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