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는 기본, 의료 붕괴 플러스···전공의 미복귀에 인건비조차 버거운 병원

의료계, "요구 수용까지 복귀 의사 없어" 전공의 이탈에 하루 10억~30억원 손해

2024-05-21     김민 기자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던 지난 4월 11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스트레칭하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이 법원에서 각하·기각됐다.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확정된 것이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사법부의 판단을 비판하면서 기존 요구안이 충족되지 않으면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을 경우 병원의 적자는 더욱 커지게 되고 이는 의료 붕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 붕괴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 16일 법원이 부산대 의대생들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다. 이에 늘어난 의대 모집인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도 이번 주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정부의 졸속 행정을 끝까지 철회시키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전공의들의 7대 요구안을 모두 수용하지 않는 이상 복귀는 없다고 못 박았다. 7대 요구안에는 '증원 계획 백지화'가 포함돼 있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 한성존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린 제1회 서울아산병원 전공의협의회·울산의대 의료 심포지엄 도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 지도 어느덧 3개월을 넘어섰다.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전공의가 3개월 이상 수련 기간에 공백이 생길 경우 전문의 시험 응시 시기가 1년 늦춰진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는 처음에는 전체의 절반가량이었으나 3월 말에는 93%까지 늘었다. 

대형 병원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수습 의사'인 전공의들이 이탈할 경우 병원 수술·입원이 반토막 나고 하루 10억~30억원 적자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 국립대 병원들이 의료이익 분야에서 적자를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규모는 △충남대병원이 –937억원 △서울대병원 -916억원 △부산대병원 -685억원 △경북대병원 -590억원 △제주대병원 -365억원 △경상국립대병원 -332억원 △전남대병원 -299억원 △전북대병원 -226억원 △강원대병원 -212억원 △충북대병원 –150억원이었다.

대형병원 분원 설립도 악영향을 받았다. 수도권 대학병원 8곳이 2029년까지 10개의 분원(총 6600병상) 설립을 추진 중이었으나 병원의 재정 악화와 공사비 인상까지 겹치며 포기할 상황이 되거나 진척이 더딘 상태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들어설 가천대서울길병원은 2027년 개원이 목표였지만 아직 사업비 조달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가천대길병원이 직원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등 비상 경영에 들어가면서 분원 건립 동력이 떨어진 것이다. 고려대의료원 역시 2028년까지 경기 과천·남양주시에 각각 500병상짜리 분원을 계획했지만 재정난으로 공사의 첫 단계인 관할 시청 인허가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의료계, "저수가로 수익 내기 어려워"

전공의 미복귀가 경영난에 일조하는 이유는 한국 의료보험의 낮은 수가 때문이다. /연합뉴스

전공의 미복귀가 경영난에 일조하는 이유는 한국 의료보험의 낮은 수가 때문이다. 건강보험 저수가 체계 특성상 대학병원이든 종합병원이든 수익을 내기 어렵고 낮은 수가에 시달려온 대형 병원들은 전문의 인건비의 절반 이하인 전공의 중심으로 인력을 꾸렸다.

심지어 대한종합병원협의회(종병협의회)는 의과대학 정원을 5년간 2000명씩이 아닌 3000명씩 늘리자는 의견을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필수 의료를 담당해야 하는데 가파르게 오르는 '의사 인건비'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 의료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건강보험 저수가 체계하에서는 대학병원이든 종합병원이든 수익을 내기 어렵다"며 "문제해결의 본질은 저수가 해결에 있지만 정부는 인건비를 줄이는 것으로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종합병원 설립 기준은 100병상 이상이며 300병상까지는 7개 이상 진료과목, 300병상 초과 시에는 9개 이상 진료과목을 갖춰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은 총 42개소로 전체 병원 중 11.6%, 병상수는 29.3%를 차지하고 있다. 종합병원은 총 320개소로 88.4%, 병상수는 70.7%를 담당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은 196개로 전체의 61.3%를 점유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영난이 계속되면서 종합병원이 전문병원으로 전환해 국내 의료 서비스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의정 갈등 속에서 전공의 없이 운영되는 전문병원들에 환자들이 몰리는 가운데 상급종합병원도 경쟁에 가세한다는 것이다. 

의료계 전문가는 "상급종합병원장은 대부분 대학이사회에서 정할 것이고 종합병원장은 대부분 자수성가한 개인 원장일 가능성이 크다"며 "분당서울대병원 2023년 진료 매출이 알리오(ALIO) 공시 상 1조333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이 150억원이었다. 영업 이익률이 1.5%였는데 수도권 대학병원들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은 해당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고 법인세를 내며 장비 등을 구매한다. 2016년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원가 자료를 근거로 한 연구에서 원가 보전율은 78.4%였고 종별 추정 원가 보전율은 상급종합병원 84.2%, 종합병원 75.2%, 병원 66.6%, 의원 62.2%로 나타났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석 달째를 맞은 가운데 지난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낮은 수가로 전공의 중심으로 병원을 꾸려가는 특성상 의대 증원 통과와 그로 인한 전공의의 미복귀는 의료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의료 붕괴 가능성에 대해 "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라면 뻔히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며 "도저히 정부라고 볼 수도 없는 정치 집단"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