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종이 잡지를 읽는 즐거움을 공유할게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관심 분야의 좋은 글과 사진이 담긴 잡지를 읽는 것은 특별한 여가 활동
오랜만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됐다. 잡지를 만들 때는 각종 취재를 위해 1년에 두어 번은 공항으로 나섰는데 공공기관에 근무하면서는 특별히 관련 업무가 없었다. 출장 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다.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될 경우는 더 즐거웠다. 끊임없이 울리던 전화와 문자는 물론 각종 미팅과 마감 일정 등으로 빽빽하게 적힌 스케줄을 그 시간만큼은 완전히 ‘오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시간 이상 휴대폰을 끄고 조용하게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게 그렇게 좋았다. 여행이 아닌 출장이니 가족을 챙겨야 하는 일도 없고, 정말 완전하게 어느 누구의 방해 없이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한 건 아니었다. 놓치고 보지 못한 영화 한 편을 보고, 잡지 서너 권을 읽는 게 다였다. 특히 잡지를 읽는 게 중요했다. 보너스처럼 주어진 조용한 그 시간,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글과 사진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힐링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언제나 탑승 전에는 공항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잡지를 구매했다. 해외 공항 서점에는 세계 각국에서 발행된 다양한 분야의 잡지가 전시되어 있었기에 늘 그 앞에 서서 어떤 잡지를 사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고는 했다.
잡지 만드는 사람이 시간이 날 때 잡지를 읽는 게 뭐 그리 특별한 것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막상 일로서 잡지를 펼칠 때는 내가 만드는 잡지와 관련 있는 소위 경쟁지나 업무에 참고할 만한 잡지를 검토하게 되는데,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그 시간에는 일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혹은 새로운 콘셉트로 제작되어 흥미로워 보이는 다양한 분야의 잡지들을 골라서 제대로 집중해서 읽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배우의 인터뷰가 실린 <Rolling Stones>나 <Vanity Fair>를 구입하기도 하고, 건축잡지, 미술잡지, 때로는 시사지, 경제지, 과학잡지도 가방에 담았다. 게이트가 열려 좌석을 찾아 들어갈 때 승객용으로 비치된 잡지 몇 권을 자리로 챙겨왔던 것은 물론이다(요즘은 승객들이 휴대폰이나 태블릿 등 개인용 디바이스로 콘텐츠를 보기에 기내에 비치된 잡지들은 대부분 사라졌는데 잡지 마니아인 나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이륙하면 아이가 사탕을 까먹듯 기대에 부풀어 한 권씩 차례로 잡지를 열었다.
이번에도 오랜 시간 잡지를 읽었다. 우선 좌석 앞에 꽂힌 대한항공 기내지부터 시작했다. <모닝캄>은 한 때 내가 편집장으로 제작에 참여했던 잡지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허투루 읽히지 않았다. 사진을 보고, 제목을 읽고, 페이지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를 감상하고, 글을 읽고, 소개된 그곳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기사를 읽고 난 후 기자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 정보와 공감, 때로는 영감까지 얻게 될 때는 기자와 함께한 스태프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페이지를 위해 그들이 고민하고 취재하고 의논했을 그 모든 과정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이번 호 특집 기사는 K-푸드인데 ‘K-팝과 K-뷰티를 너머 한류의 주역이 된 한식’을 파인다이닝부터 서울의 유명한 노포, 명사들이 추천하는 음식과 식당까지 한국인만의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잘 드러내는 구성으로 기획됐다. 정갈하게 찍은 사진과 꼼꼼한 취재에 감탄하며 소개한 몇 곳은 시간 내어 가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잡지를 통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만나, 글의 내용에 공감하며 필요한 정보를 알아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물론 요즘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을 읽으며 감탄하고 교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이 잡지를 넘기는 아날로그 활동은 잡지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되새기며 각자의 머리와 마음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도록 물리적 시간을 만들어낸다. 빠르게 바뀌는 온라인 화면이 아니라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콘텐츠를 천천히 읽어갈 수밖에 없는 물질적 특성이 프린트된 글과 사진에 조금 더 몰두하게 하기에, 받아들이고 느끼는 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잡지는 특정 분야에 집중해 그 분야에 식견을 가진 에디터의 감각으로 큐레이션 된 여러 콘텐츠를 모아놓은 책이 아닌가. 그러니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잡지를 만나보는 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여가, 좋은 취미활동이 될 수 있다.
잡지를 만들어왔던 사람의 입장에서 잡지를 좋아하는 애호가의 입장으로 바뀌어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행기 안 좁은 좌석은 그런 몰입을 하기에 적당한 자리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