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문재인 만나 라인 인수 이뤄낸 손정의 '탈 네이버' 변심 왜?

경제 안보에 장사 없는 AI 혁명 시대 라인 인수 암묵적 동의 받아냈던 孫 재발 방지책 안 통하자 "중대한 사태"

2024-05-10     이상헌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7월 4일 청와대에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을 만나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이버가 지분을 보유한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뺏으려는 일본 측 시도가 노골화한 가운데 야후 재팬과 네이버 라인 통합의 결정적 계기가 된 문재인 전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5년 전 회담에 관심이 쏠린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일본인 국민 메신저인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야후'는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50%씩 출자해 설립한 A홀딩스가 최대 주주다. 소프트뱅크가 A홀딩스 주식을 한 주라도 더 보유하면 네이버는 경영 주도권을 잃는다.

일본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 책임을 물어 네이버와의 자본 관계 재검토란 행정지도를 내리면서 라인 개발자인 신중호 라인야후 최고상품책임자(CPO)가 전일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이에 따라 라인야후 이사는 모두 일본인이 됐다.

민간기업 내부에서의 경영권 다툼이라면 이래라저래라할 것은 없지만 '경제 안보' 개념을 앞세운 일본 정부가 네이버의 동업 상대방인 소프트뱅크의 뒷배인 것으로 드러나며 과거 한국 정부의 역할에 대한 복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네이버에 자본 변경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며 "소프트뱅크가 머저리티(majority·다수)를 취하는 형태로의 변경이 대전제"라고 밝혔다. 그는 손정의 회장도 "중대한 사태이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라인 인수 일등 공신인 손정의 회장은 지난 2019년 소프트뱅크의 실적 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한 치밀한 로비 끝에 같은 해 11월 라인과 야후재팬 통합을 이뤄냈다. 당시 소프트뱅크를 투자 회사로 전환한 손 회장은 주력 투자처이던 미국의 사무실 공유 서비스업체 위워크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되는 등 투자업체의 경영 악화 사례가 속출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에 손 회장은 일본 내 사용자 수 8200만명을 자랑하는 라인 인수를 통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지난 2019년 7월 4일 문 전 대통령과 단독 회담에서 손 회장은 "한국이 인터넷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면서 교육, 정책, 투자, 예산 등 AI 분야 전폭적 육성을 제안했다. 당시 회동은 일본 정부의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수출 규제 논란이 큰 가운데 이뤄져 관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국 시장의 규모는 한계가 있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며 "소프트뱅크가 가지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부탁한다"고 말했고 손 회장은 "그러겠다(I will)"라고 답했다.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 양자 회담 182일 만인 2019년 11월 18일 라인과 야후재팬 합병이 성사됐고 2020년 10월 실무적인 기업결합(M&A)을 마무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졌고 일본 총무성은 라인야후가 네이버에 과도하게 시스템 업무를 의존해 사이버 보안 위기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진단했다.

지난달 20일(현지 시각) 미국 하원이 틱톡의 모기업인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사업권을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앱스토어에서 틱톡 앱을 내려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성경제신문DB

틱톡·알리익스프레스·테무 사태 불똥
개인정보 제3국 유출 우려 불식 못해 

네이버와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을 골라 투자해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것이 손정의 회장의 야심이었다. 하지만 라인야후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보고서'를 제출한 뒤에도 일본 총무성(우리나라의 행정안전부에 해당)은 "플랫폼 사업자는 사기업인 동시에 공공재"라며 두 번째 행정지도를 내려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요구했다. 결국 라인야후 역시 네이버로부터의 경영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각국에서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 유출하는 것이 경제 안보 문제로 인식되면서 손 회장의 경영 방침에도 불똥이 튄 것이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틱톡 퇴출법'이 전격 통과돼 발효된 데 이어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한국 시장을 무차별 공략하면서 '개인정보 수집' 혐의로 고발당한 상황이다.

정보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라인 역시 한국의 대형 포털사인 네이버 측이 수집하는 개인 정보가 기업 활동을 넘어 해당 본국이나 제3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아무리 AI가 대세지만 경제 안보에 장사 없는 글로벌 외교 현실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